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lody Nov 04. 2019

#002 미국 출장과 자발적 수행 생활

미리 좀 알려주시지... 미국은 재미 없다고...!

미국 시간으로 10월 17일, 나는 난생 처음 미국 "본토"를 밟았다. (괌도 미국이니까...) 삼십 몇년만에 드디어 미국 땅을 밟았는데 그 첫인상이 심히 좋지 않다. 유나이티드는 바람이 많이 분다고 뉴욕에서 내쉬빌로 가는 비행기를 취소했고 나를 뉴욕으로 데려다 준 항공사는 루프트한자라 바우처 한 장도 줄 수 없다고 한다. 스피릿은 뜨던데... 뭐가 이렇게 어렵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나는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교통 공학을 향해 학구열을 불태우던 학생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학해서 얼마 안된 시점부터 대학원이 가고 싶었다. 그것도 미국으로 말이지. 입학하고 얼마 안됐을 때부터 모두가 취업을 이야기할 때 나는 유학을 이야기했다. 모두가 토익에 열을 낼 때 나는 토플과 GRE를 알아보러 다녔더랬다. 결국 3학년을 마치고 1년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GRE 시험 준비를 하고 토플 학원을 다니고 두 시험 모두 응시하고 미국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했지만 난 가지 못하고 전혀 다른 곳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업을 가졌다. 아, 이 얘기는 나중에 하고...


미국에 가면 뭔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냥 막연하게도 미국에 가면 뭔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눈치를 보지 않고 할 수 있고, 거기에 풍부한 문화 생활이 함께 따라오는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할 것만 같았다. 미국에 가면 무한한 자유가 주어질 것 같았다. 그토록 미국 행을 열망하던 대학교 시절이 끝나고 그 이후로 학위를 두 개나 더 따고 취직을 해서도 미국에 갈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아, 괌엔 갔었구나. 오히려 이제껏 관심도 흥미도 없던 유럽은 출장으로 갈 기회가 많았고 음악, 미술 등등 풍부한 자극을 주는 유럽의 매력에 빠져 미국에 대한 열망은 저기 저 깊은 곳으로 사라져갔다.


올해 초, 한 달의 미국 출장이 결정되고 지도를 펼쳐보니, 가야 될 곳이 심상치 않다. 야심차게 론리 플래닛을 샀는데 내가 한 달 있을 곳은 다섯 페이지도 안된다. 뭐가 정말 없다. 이 곳은 테네시 주 내쉬빌. 컨트리 뮤직의 성지라는데 나는 컨트리 뮤직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아무리 찾아봐도 빈약한 대중 교통 수단은 내 발을 꽉 묶어 나는 2주 째 숙소와 학교 왕복 일정을 반복하고 있다. 한 달 예정으로 이 곳에 왔고 벌써 2주가 지났지만 앞으로 2주나 '더'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갑갑하게 만든다.




생각보다 출장 일정도 빡빡하고 해야할 일도 많아 시내는 한 번 밖에 나가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긴 재미없어!라는 건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크송과 컨트리송이 가득할 것만 같던 다운타운은 장르불문 시끌벅적한 음악과 암스테르담에서 본 적이 있는 페달 터번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파티의 핫 스팟이었다. 참고로 내가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은 일요일 오후 1시 경이었다. 지은 지 얼마 안된 고층 빌딩 아래의 오래된 펍과 터번에서 모두 적당히 (라고 믿고 싶다) 취한 채로 신나게 흔들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신나지 않았다. 정신없는 음악, 담배 연기, 더러운 거리... 내쉬빌 다운타운은 이렇게 내 머릿 속에 남으려고 한다.




이곳엔 분명 풍요는 있다. 오히려 한 걸음만 걸어 나가면 다양한 메뉴를 갖춘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어딜가도 물건의 구색이 잘 맞춰져 쇼핑하는 재미도 있다. 실제로 워싱턴에서 손수 운전해서 와 준 친구 덕분에 단 한 번 미국의 명물, 몰과 아울렛을 방문했지만 단 한 번으로도 내 카드 매출액은 삽시간에 올라갔으니깐. 하지만 차가 없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이 불편함, 그리고 최근 개발이 급격히 진행되는 내쉬빌의 특성 상, 무언가 정돈되지 않은 것만 같은 이 도시의 어색함이 나를 지루하게 만든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내가 이 동네에서 흔치 않은 한국에서 온 여자라는 것 때문에 되도록 저녁에는 카페에도, 터번에도 웬만하면 가지 말라고 한다. 아침에 조깅도 같은 이유로 다시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과하게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않냐는게 그들의 의견이다.) 차가 없어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서 퇴근하면 집에만 있다보니 생각만 많아진다. 도시에 있지만 외진 곳에 들어가서 수행하는 기분이랄까. 아직 2주 남았다. 앞으로 2주 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001 I want my time with yo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