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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터리박스 Feb 03. 2018

북한이 미국에게 최대굴욕을 안겨준 사건

어휴 하는짓은 역시

최근 북한은 미국에게 푸에블로호 사건을 잊지말라며 대북제재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으며 최근 탄도미사일 실험 발사는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떻게 북한이 압도적인 군사강국인 미국을 상대로 이러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북한이 자랑스러워하는 푸에블로호 사건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68년 1월 21 북한군 특수부대원 30여명이 박정희 암살을 목표로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다가 대부분이 사살당하고 김신조가 생포된 소위 1.21사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1968년 1월 23일 북한 동해상 원산 앞바다에서 미 해군의 소형 함선이 북한 해군과 공군의 공격을 받고 강제 나포당하였습니다. 



나포당한 미 해군의 USS 푸에블로 함은 배수량 900t 최대속력은 시속 13노트(24㎞/h)에 불과했으며, 자체 무장은 50구경 기관총 2정 뿐인 정보수집함(AGER-2)이였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중무장한 특수부대가 출현하고, 불과 이틀만에 동해에선 미해군 함정이 나포당하면서 한반도 주변 정세는 그야말로 전쟁 전야를 방불케 하였습니다. 



사실 1950년대에는 북한 해군력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미 해군이 북한 해안을 제 집 드나들듯이 했고 이게 자주 반복되니까 북한 근해를 가더라도 별다른 대비책이 없었습니다. 이에 반해 북한측은 초계정 4척으로 푸에블로 함을 사방에서 포위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고 미국 전투기가 구출하러 올 것에 대비해 MiG 전투기까지 출동시켜 원상항까지 끌고간 것 입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이 진행중이었는데 사건 발생 1주일 뒤 베트남에서는 베트콩의 테트 공세가 개시되었으니 엎친데 덮친격이였습니다. 그래도 미군은 베트남 전선으로 가려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구축함 2척을 원산 앞바다로 보냈으며 핵폭탄을 실을 수 있는 B-52 전략폭격기와 F-105 전투기 수십대를 미국과 일본에서 오산과 군산공군지로 옮겨 전진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인질이 한두 명도 아닌 82명이나 잡혀있으니(승조원 83명 가운데 나포 과정에서 1명이 총격으로 전사)섣불리 건드리지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함장 버처 중령 이하 푸에블로 함 승조원들은 공개적으로 세계 각국의 기자단 앞에서 북한 영해 침범과 북한에 대한 해적 행위를 자백하는 문서에 서명했으며 미국 정부도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런 굴욕 끝에 미국은 그나마 미국을 위해 싸운 군인은 반드시 고향에 돌려보내며 죽었으면 시신이라도 거둬들인다는 원칙은 지킬 수 있었으니 나포 11개월 뒤인 1968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에 비로소 승조원 82명과 전사자 시신 1구는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푸에블로호 사건에서 보여준 저자세에 자신감을 얻은 북의 김일성 정권은 불과 열달 뒤인 10월 남한내 해방구 건설을 목표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푸에블로호를 납치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주일미군의 정찰기를 격추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현재 푸에블로 함은 원상항에 머물러 있다가 있다가 1999년 10월 평양의 대동강변으로 옮겨저 당시의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있으며 이후 단체관람객이 즐겨 찾는 반미 교육기지로 쓰이고 있습니다. 푸에블로 함은 미군으로서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상징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포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미 해군 함정 리스트에서 푸에블로 함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고 현역함의 자격으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되돌려 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나라도 북한 함정을 같은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의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정, 지난 1996년 9월 18일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상에 좌초한 것입니다.  이 잠수정을 타고 침투한 무장공비 25명 중 13명이 국군에 의해 사살되고, 11명은 같은 동료에 의해 피살됐으며, 1명은 생포됐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사과를 요구했으나, 뭉기적거리다 너무나 많은 증거물이 나오자 적당히 외교부가 유감을 표명하는 식으로 사과 아닌 사과를 했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고 사살된 북한 공작원들의 유골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좌초된 잠수정은 푸에블로 사건을 참조해서 정동진 근처에 통일안보공원으로 옮겨 안보교육을 위한 전시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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