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에 동전 이백 원을 넣고 커피를 뽑아 들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긴 의자 귀탱이 앉았다. 나 딴에는 좀 떨어져 앉는다고 앉았는데, 그래도 저쪽에서 할머니 세 분의 자만자만한 소리가 들린다.
"그 할매 요새 안 보이대, 아프다카더마는 많이 아픈가, 한 동안 못 본 것 같네."
"그 할매 누구.. 아 그 오른쪽 어깨 기울이진 할매."
"응. 한쪽 어깨 수술했다하더만 영 안 올라가는 갑더마는, 그래도 말은 총알처럼 얼마나 힘 있게 쏟아내는데, 크크, 웃기는 소리는 또 얼매나 잘한다꼬. "
중간에 끼어 앉아 있던 할머니가 담담한 투로 말하신다.
"그 할매 세상여행 마치고 갔다 아이가."
"엄마야, 진짜로? 언제?"
"좀 됐다."
"글나, 아.. 그 새 많이 아팠는갑네. 이왕 가는 길 고생 안 하고 갔으믄 좋았을낀데, 잘 갔는가?"
"아들이 효자 아이가, 할매 병원에 있는데 매일 와가지고는 “엄마, 좀 있다가 가소, 좀 있다가 가소. 내가 인자 편해서 엄마 좋은 거 많이 해 줄 수 있는데, 좋은데도 많이 데꼬 가 줄 수 있는데 하믄서, 가지 말고 좀 더 있다 가라고 매애 그랬단다. 그라믄서 누워있는 사람한테 금반지, 금목걸이를 해 와서 끼아주고, 걸어주고 했단다."
“에구우.. 가는 길에 그기 뭐 필요하노. 무겁기만 하제”
“그래도 마음 아이가, 병원에 툭 던져놓고 코빼기도 안 보이는 자슥들이 얼마나 많은데"
"흐유-으.. 아들 마음이 곱네. 그 마음이 고마바서 할매 가는 길 안 서운했겠다.”
“글네. 가는 길에 호강했네. 살믄서 온갖 못 볼 거 다 보고, 다 겪고 살았다카드마는. 그 할매 구십은 됐제.”
“구십 넘었을구로. 내 보다 세 살 많으니까, 인자 구십 하나쯤 됐을기다.”
“에구, 좀 더 살아도 될 나이구만.”
“세상길 떠나는기 어데 나이대로 되나, 그만하믄 세상 구경 다 안 했겠나. 나도 마 인자 세상 구경하는 거 지겹다”
“뭐라캐샀노, 인자 부터재. 나는 내 데리러 오믄, 바빠서 못 간다 할끼데이~.”
하면서 갑자기 한 할머니가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러대신다
~♬ 팔십세에 저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자존심 상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
~♬ 구십세에 저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또 왔냐고 전해라 ~
처음엔 못 듣는 척 고개 숙여 폰 만 들여다 보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져 열심히 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상 여행길의 달인, 여행 고수를 보는 것처럼. 눈물은 감각도 없이 흘러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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