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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Aug 17. 2024

경계에서, 선을 넘지 않도록

식탁 앞에 앉았다. 영감이 먼저 입을 연다. "딱 경계에 있다네." "아~아. 그럼 그렇지. 무슨 치매.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네. 선을 넘지 않도록" 75살, 76살 부부의 대화다. 


60대가 되기 전에 말단 공무인 남편은 퇴직을 했다. 퇴직금의 대부분을 연금으로 돌렸으니, 넘치는 액수는 아니지만, 노후에 식비 걱정은 안 해도 될 만하다. 


정적인 것보다 동적인 것에 더 즐거움을 느끼는 남편은 이것저것 취미로 해 보다가 게이트 볼을 낙점했다. 자기에게 딱 맞는 운동이며 즐거움이다. 그때부터 70살이 될 즈음까지 거의 출근하다시피 운동장에 나갔다. 지붕도 있고, 천막도 있어서 사계절 아주 특별한 날씨가 아니면 항상 나갔다. 그리고 공무원 퇴근하듯이 그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규칙적이었다. 운동하러 나가는 것이 모든 것보다 첫 번째였다. 운동장이 자신의 텃밭인양 애지중지하듯이 나갔다. 신입회원이 들어오면 열과 정성을 다해서 가르쳐주고, 남편의 인기는 최고였다. 


근본이 성실하고, 정직한 성품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고직식의 끝을 달리는 성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20대부터 운전을 했는데, 본인의 과실로 사고를 내 본 적도 없다. 위법으로 과태료 한 번 낸 적도 없다. 그것 또한 본인 자랑의 첫째 순위였다. 그랬던 사람에게...


그날은 아침부터 작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가 오후에 들어서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급기야 폭우로 나아갔다. 너무 쏟아지는 바람에 항상 태우고 다니던 멤버 외에 다른 방향으로 가는 멤버도 태워가게 되었다. 


그날.. 엄청난 사고를 내었다. 70이 되던 해였다. 분명 자신은 초록색 불을 보고 꺾었다고 한다. 블랙박스에서는 아직 초록색 불이 아니었는데 꺾은 것으로 나왔다. 차에는 남편까지 7명이 타고 있었다. 운전을 하는 남편과 옆 좌석에 앉은 할아버님은 아무 이상이 없고, 뒤에 탄 일행은 모두 사고로 현장에서 뿔뿔이 흩어져 각각 다른 병원으로 실려갔다. 다행히 안전벨트 모두 장착,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모두 전치 몇 주, 두 분은 3개월, 6개월의 치료를 해야만 했다.


그때부터였다. 워낙 정직, 성실, 인생에 실수 없음으로 살아온다고 자부했던 본인 스스로가 본인에게 관대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거기다 그동안 한 몸, 한 마음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했던 운동 멤버들의 일탈이었다. 분열이었다. 뒤에서 그의 실수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못 견뎌했다. 


살면서 워낙 정직, 성실, 법 없어도 살 사람이란 인장을 찍은 사람으로 대접받고 칭찬받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으로서 작은 비난도 견뎌내기 힘들어했다. 그렇게 우울증이 오기 시작했다. 밤에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불면의 밤이 찾아왔다. 당연히 운동도 하러 나가지 않았다. 


옆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이런저런 조언을 해도, 환경을 바꾸어 주려 노력해도 본인이 응하지 않는 것에는 답이 없다. TV에서 축구, 야구 경기를 봐도 그냥 묵묵하게 본다. 예전처럼 작은 환호성도 없다. 무엇을 봐도 재미가 없다. 하다 못해 가까운 곳 여행도 마다했다. 내가 조르면 할 수 없이 끌려가는 듯한 모양새로 나섰다. 


그런 증세가 심해지는 듯 본인도 느꼈는지, "내가 치매가 왔나? 어제 한 일도 생각이 안 나네. 뭘 해도 재미가 없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병원에 가서 진료 한 번 받아 보면 어떨까?, 요즘 정신과는 젊은이들도 많이 가는 곳인데.. 옛날 우리가 생각하는 정신병 걸려서 가는 정신병원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힘들 때 상담하러 가서 치유받는 그런 병원이니까. 같이 가 볼래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신병원은 남들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정신 질환자들이나 가는 이상한 병원으로 고정된 개념이기도 해서, 부드럽게 권했다. 


처음 그 말을 들을 때는 불에 댄 것처럼 펄쩍 화를 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도 자신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혼자 다녀와 보겠다고 했다. 다녀와서는, 우울증이 조금 있다네. 기억이 안 나는 그런 거는 이 나이면 누구나 있는 거라고 괜찮다고 하더라며, 우울증 약만 지어 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본인도 그런 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듯, 여러 가지를 해보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 운동장에서의 멤버들과의 즐거웠던 시간을 대체해 주지는 못하는 듯했다. 그 원인이 자신이 저지른 사고로 인한 것이라 생각, 후회, 자책하는 듯했다. 


한때 좋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되돌아가고, 하는 시간이 반복되어서 곁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쓰여서 자주 관찰하게 된다. 


그러다가.. 행동반경이 아주 약간, 남들은 모르겠지만 곁에 있는 내 눈에는 그것이 들어왔다. 어느날 밤에 화장실 가느라 일어났다가 깜깜한 거실에 불도 켜지 않고 어둠 속에 우두커니 쇼파에 앉아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 장면을 몇 번 보고 나서는 조심스럽게 다시 병원엘 가 보기를 권했다. 


다녀 와서 한 말이다. 지난 번 보다 조금 나갔나 보다. 지난 번에는 우울증 약을 받아와 며칠 먹더니, 이내 느낌이 좋지 않다며 먹지 않았다. 


"경계에 있다네. 그래도 심각하게 생각지 말고 일상적으로 생활하라네. 처방은 주던데 약은 안 지어 왔다." 

"잘했어요. ~! 경계에 있으니 선만 안 넘으면 되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영감 혼자 놔두고 한 달 정도의 긴 해외여행은 가지 못하겠구나. 하고..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다. 의사 선생님 표현이 너무 멋지다. 경계에 있다니. 


'영감, 당신이 경계를 넘으려 하면 내가 잡아끌게. 우리 손 딱 잡고, 절대 선을 넘어가지는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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