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용감했다.

by 칠십 살 김순남

버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는 오른쪽 첫 번째 자리다. 달릴 때 앞 시야가 탁 트여서 좋고, 의자 아래에 다리나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는 디딤판이 있어서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후여서 버스는 널널했다. 뺏길세라 내가 원하는 자리에 얼른 앉았다. 편안하다. 이제 집에 가는 동안 잠 좀 자야겠다. 어느새 나는 잠이 들었다. 굵은 아저씨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바로 내 앞에서 덩치가 커다란 아저씨가 기사 아저씨에게 뭐라고 큰소리를 해 댄다. 팔뚝의 문신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속으로 ‘조폭인가?’ 두려운 눈으로 흘깃 쳐다보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신은 계속 횡포다. “왜 안 내려주냐고, 왜 안 내려주냐고 ~오, 이 **** 야”를 반복하고 있다.


기사 아저씨 문신의 가당찮은 언어폭력에도 암말 안 하신다. 다음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앞문이 열렸다. 올라타는 승객은 없었다. 기사 아저씨 “내리소!” 딱 한 마디 하신다. 문신 아저씨 “뭐라꼬, 내리라꼬, 이 새끼야 내리라꼬, 이기 마 콱” 하며 손을 올리시며 치려한다. 기사 아저씨 몸을 한껏 움츠리신다. 문신 아저씨가 내리지 않으니까 그냥 문을 닫고 달린다. 달리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기사 아저씨 쫄렸나보다 생각했다.


문신 아저씨 갈수록 열이 뭐처럼 뻗쳤다. 자고 있느라 시작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문신 아저씨, 아무래도 대낮에 술도 한 잔 걸친 것 같고 폭력적이다. 계속 기사님을 괴롭히신다. 뒤돌아 버스 안을 살폈다. 누군가가 나서서 좀 말려줬으면 싶어서였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도 아니고, 탑승하고 있는 승객은 대부분 아줌마, 나처럼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다. 모두들 못 본 척 창밖만 보고 있다.


문신 아저씨는 욕으로도 화가 안 풀리는지 급기야는 손을 뻗어 기사 아저씨 멱살을 잡으려한다. 그때까지 추이를 보던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문신 아저씨 ~~~~이, 기사분에게 그러면 안돼요. 지금 차가 달리고 있잖아요.!!!”

그때서야 내 뒤에 앉아있던 중년 아줌마의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대낮에 술도 처먹고 쯧쯧”


그 소리가 들렸나 보다. 문신 아저씨 획~ 우리 쪽으로 돌아서면서 “뭐라꼬!! 이 아줌마가 확! 하면서 앞자리에 앉아있는 나에게 주먹을 치켜들고 후려치려 한다. 내가 한 말인 줄 알았나 보다. 너무 놀라서 “엄마야 ~ 하며 몸을 팍 숙이는데, 그 순간이었다. 버스가 꺼 ~~~~~~~~억 급정거를 한다.

문신 아저씨 철퍼덕, 꽝! 버스 통로로 팍 ~ 미끄럼을 타면서 뒤로 나자빠진다. 그동안 문신의 폭력에 한 마디도 못 하던 기사 아저씨가 급히 내리시더니 어디로 가신다. 창 밖을 보니 버스 정거장도 아니다. 아저씨가 참다못해서 버스를 내 팽캐치고 어디로 가셨나 보다 생각했다. 통로에 나뒹굴어져 일어나려고 꿈틀 거리는 문신 아저씨를 보면서 큰일 났다는 생각에 머리가 쭈뼛했다. 그런데 잠시 후, 경찰복을 입은 아저씨 두 분이 올라타신다.


그때야 알았다. 기사 아저씨가 버스를 끼 ~~익 하고 대신 곳은 경찰서 앞이었다는 것을. 이곳은 버스정거장이 아니다. 기사 아저씨는 도로변에 위치한 경찰서를 아셨던 거다. 그곳에 갈 때까지 말과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문신 앞에서 입을 꽉 다물고 있으셨던 것이다. 경찰 아저씨들이 문신을 끌고 갔다. 기사 아저씨는 승객들에게 미안하다 하고 운전대에 앉으셨다. 앉으시면서 날 보고 멋쩍은 미소를 던지더니, “할매 용감하던데요.” 하신다. 나도 미소를 지었다.


조금 진정되고 생각해 보니, 문신 아저씨는 그 와중에도 날 보고 “아줌마”라고 했는데, 기사 아저씨는 날보고 “할매”라는 적나라한 말을 던진다. 새삼 내 몰골을 내려다봤다. 말 뽄새는 문신 아저씨가 더 낫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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