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여행을 떠날 때는, 전 날 밤 야근까지 마치고 공항 터미널이나 페리 터미널에 와서 세수하고 샤워하고 식사하고 아침 비행기나 배로 훌쩍 떠날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 해외 자유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젊을 때보다 좀 더 번잡한 수순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일단 병원에 가서 영양제를 한 대 맞는다거나, 협착증, 디스크 증세, 약해진 관절, 혈압 등으로 치료도 받고, 약도 며칠 분 처방을 받아 와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 혹시나 싶어서 약방에 들려 개인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소염제와 영양제도 필수다. 미장원에 가서 파마도 하고 염색도 해야 한다. 만약 한 달 정도의 장기여행이라면 염색약도 챙겨야 한다. 한 번씩 먹는 양식은 별미로 맛나지만, 육십 년을 넘게 김치찌개, 된장찌개에 길들여진 입맛에 한 달의 장기여행의 양식은 괴롭다. 그러니 몇 가지 토속적인 음식도 장만해야 한다. 해외에 나가서 카드 사용하는 것도 내 정보가 새어나가지는 않나? 걱정스럽고, 해외 현금 인출기를 사용할 줄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돈을 현금으로 환전해서 허리에 차 보고, 깜빡이는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못해서 여권도 몇 번이나 넣었다 뺐다 하며 존재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또 현지에 가서 가족들의 안부도 챙겨야 한다. 그렇다고 해외에 나가서 전화를 펑펑 해 댈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전화를 싸게 할 수 있는지, 이리저리 묻고 자식들의 손을 빌려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렇듯 번거로운 준비를 해야 하면서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 두 가지로 압축해서 생각할 수 있겠다.
순수히 넓은 세계를 향한 동경,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 영화와 책, 각종 미디어에서 편집되어 보인 꿈속의 나라, 동화 속의 세계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그 하나고,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해외 자유여행, 이 정도의 호사는 즐길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겠어, 하며 자신의 지난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그 하나가 아닐까.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몸소 체험하게 되는 해외 자유여행, 그것도 육십이 넘어서 하는 해외 자유여행은, 그래서 더욱 값진 인생의 좋은 성찰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던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수십 년을 자식들 키우며 먹고 사느라 자신의 꿈을 접고 숨죽이며 살았던, 중 장년의 시간들을 보내고, 그나마 용기를 내어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툭툭 털고 나설 수 있는 나이, 그런 나이가 60대쯤, 그래, 나가 보자, 용기 내어 해외 자유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렇게 꿈꾸어 왔던 낯선 세상을 체험하며 돌아다닌다. 처음 한 두 번은 우리와 다른 환경, 집, 궁전, 교회, 다른 언어, 다른 얼굴, 낯선 거리와 낯선 문자의 간판들, 많지 않은 시간 안에서 우리 눈과 머리를 스치고 가는 풍경들, 그 다름에 눈을 반짝이며 매혹되지만, 두서너 번의 여행이 지속되면 이내, 눈 속으로 들어오는 풍경들이 익숙해지고 모든 것이 비슷비슷하게 보인다.
유럽에 가면 온통 성당과 교회, 또는 유대인 마을, 모스크, 손주들이 보는 애니메이션 디즈니랜드에서 봄직한 둥근 지붕과 뾰족한 탑이 있는 궁전과 화려한 내부 등, 비슷비슷한 건축물들이 너무 많다. 처음 볼 때는 와 ~ 하지만 곧 식상하게 된다. 특히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더하다, 멋진 위인들의 동상도 자꾸 보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바이올린, 기타, 각종 현악기를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들이 처음에는 멋져 보이지만 그 또한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 지갑을 열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갈등하게 한다. 울퉁불퉁 몇 백 년 되었다는 골목의 보도블록도 처음 밟을 때는 그나마 내가 낯선 도시로 왔구나, 몇 백 년 전의 유럽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구나 하는 의미 부여와 생경함에 불편스러움이 잠시는 멋스러움으로 느껴지지만 긴 시간 걷다 보면, 특히 캐리어를 끌고 이동해야 할 경우의 곤란함은 참 힘들다. 젊은이도 그럴진대 늙은이는 더 그렇다.
TV에서 보았던 우리와 체구도 얼굴도 다른 유럽인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노천카페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장면은 늙은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다. 지금이야 노천카페가 무어 그리 특별하겠는가마는 70의 늙은이들에게는 쉽게 할 수 없는 행위이며 사치이기도 하다. 나도 저렇게 노천카페에서 멋지게 식사와 차를 마셔봐야지, 하며 첫 유럽여행에서 노천카페를 찾아 앉는다. 그러나 그 멋은 한 번으로 족하다. 차도에서 날리는 먼지, 골목길을 걷는 행인들의 발자국 소리, 그것뿐이랴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지붕에 천막이 처졌다 하더라도 아스팔트에서 품어오는 열기는 노인들을 지치게 한다. 다음에는 노천이 아니라 실내를 찾게 된다. 꿈은 그냥 꿈이었을 때가 더 낭만적이다. 그것이 현실로 내 앞에 왔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여행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 호텔에서 몇 박을 묵을 경우, 매일 아침 똑같은 조식, 마른 빵과 요구르트, 우유, 커피, 소시지, 햄, 그나마 밥이 나온다면 알량미 같은 길쭉한 쌀이 밥이란 이름으로 테이블에 올려져, 기름기 없이 풀풀 날리듯 접시에 덜어서 먹을 수 있는 정도이다. 그렇게 한 달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대부분의 나이 든 사람의 여행의 행복한 시간은 저 멀리 가 있다.
오래 꿈꾸어왔던 세상을 만났을 때의 현실은, 지금껏 힘들었다고, 많이 인내하며 살았다고, 이제는 ’나‘라는 자아를 찾아 떠나보겠다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며 나섰지만, 결국은 그 세상도 그동안 살아왔던 내 세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잠자리와 먹거리 등 나와 다른 그 무엇에 대한 불편함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될 뿐이다.
그동안 힘들었던 현실의 시간에서 떠나 아무에게도 무엇에게도 구속받지 않은 나만의 시간의 행복은 딱 일주일에서 길게 잡으면 보름이다. 개인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서 해외 자유여행을 하게 되면 대부분 그 시간 범주 안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연애가 그렇고, 결혼이 그렇다던가? 한눈에 반하고, 그 반짝이던 스파크는 얼마나 짧은 순간에 사라지며, 눈에 씐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은 또 얼마나 짧은가? 그럼에도 한동안은 콩깍지가 벗겨진 것을 애써 모르는 체 콩깍지가 끼인 증상처럼 행동하다가 끝내는 자신의 맨 얼굴과 맨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대부분 사람들의 결혼 생활은 이어지고, 그렇게 모두가 사는 거라며, 메마른 사랑과 감정 속에서도 각자의 인생의 책임량을 다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여행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다. 비행기를 타고 열 시간을 넘게 가서 만난 새로운 도시는 보는 순간 눈에 콩깍지가 씌이지만, 위와 같은, 한 호텔에서 매일 아침 똑 같이 마른 빵을 며칠 동안 지속적으로 먹게 되면 어느 사이 콩깍지가 떨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마른 빵을 목에 넘길 때의 그 뻑뻑함, 아이들이나 먹는 햄, 소시지, 진한 커피의 쓴 맛은 순간, 내 집의 편안한 식탁을 그리워하게 한다.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그 증상이 빨리 온다. 그러면서도 여행은 이런 거야 하며, 때로는 다른 생활환경, 방식, 그것을 경험하며 다른 인생을 체험해 보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의 맛이야, 그게 길 위에 서는 거지, 하며 멋스런 문장으로 스스로 그 시간을 책임지려 하는 거와 같다.
젊을 때가 아닌, 나이 들어서 하는 여행의 다름은, 책임지려는 자신의 인생의 시간이 끝으로 향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회귀의 본능에 충실하게 되고, 돌아와, 예전에 그렇게 떠나고 싶어 했던 자신의 공간이 얼마나 안락한 곳이었는지를 빠르고 깊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결코 나쁘지 않은 공부다.
2019년 여름, 그리스, 불가리아, 헝가리 여행 중에 친구가 한 말은 그것을 입증한다. 그때 함께 한 친구는 2012년 프랑스 여행을 시작해서 해외 자유여행을 다섯 번째 함께 하는 친구며 나보다 2살이 많은, 72살이다.
우리가 2013년 이탈리아 여행 갔을 때, 내가 한 말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고 했다. “내가 이 나이에 이탈리아로 자유 여행을 오게 되다니,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 생각하니 내가 잘 살아온 것 같다.”라고 했단다. 나는 내가 한 말을 기억 못 했다. 그때 아마 이탈리아의 멋진 아말피 해안을 보면서 내 가슴에 충족한 뭔가가 느껴졌던 가 보다. 그러니 지난 고난의 시간들이 고통의 시간으로 추억되지 않고 열심히 인내하며 잘 견뎌 와서, 지금 이 시간을 누리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결과론을 이끌어낸 것이다.
나의 그 독백은 친구에게도 적잖은 울림을 준 것 같다. 그러니 나는 내 말을 기억 못 하는데 친구는 그 말을 가슴속에 오래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겠지. 그녀 또한 자신의 72살의 해외 자유여행의 그 시점을, 내가 이 나이에 자유 여행으로 그리스로 오다니, 내 인생도 괜찮았던 것 같애. 라는 긍정적인 결과론을 가슴에 담았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그리스가 멋진 도시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부산 영도에 사는 그 친구는 그리스는 별로야. 산토리니도, 미코노스도 그래. 내가 바다를 매일 보잖아, 그래서 그런지 별 느낌이 없더라고. 했다. 그렇다. 아마 젊은이였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떠났고 그리스란 단어가 주는 고대적인 느낌, 하얀 집과 푸른 지붕과 에게해의 푸른 바다, 그 멋짐을 입에 올렸을 터인데 70대 늙은이들의 시각적인 포커스는 달랐다는 것이다. 해외 자유여행, 내가 그 어려운 행위를 스스로 해내고 있고, 하고 있다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만족스러운 것이다. 내가 나이 듦에 있어서 무기력하지 않고 젊은이들처럼 해 낼 수 있었다는 것, 할 수 있다는 것, 긍정적인 마인드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 노년에 들어서 해외 자유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도 부합한다.
좋지 않은가, 나이 들어 여행한다는 것은, 지난 무수히 아팠던 시간들을 위로해 주는 시간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설령 꿈꾸어 왔던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이 내가 살아왔던 무수한 시간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도, 그 속에서 지난 내 시간들을 위로받을 수 있는 것도 나이 들어 여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감사함이니까.
청소년 시절, 책 속의 주인공들이 겪는 동화 같은 사랑, 애증, 상처, 전쟁, 죽음. 그런 것조차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그 세상을 보고 싶고, 체험해보고 싶어 오래오래 작은 돈을 짬짬이 모은 통장을 헐어 길을 떠난다. 마음은 수십 년 전 소녀의 감성을 품고, 육체는 70대의 노구를 이끌고 비행기를 탄다. 열 시간 넘는 하늘 공간에서의 시간, 시간에 따라 깜깜한 공간에서 젊은이들은 손바닥만 한 모니터를 켜 놓고 열중하지만, 늙은이들에게는 작은 모니터에서 품어져 나오는 광선이 피로하기만 하다. 평생을 남의 밥상을 차려주었던 것에 대한 보상 인양 예쁘고 젊은 스튜어디스들의 친절한 식사 서비스는 짧은 순간 늙은이를 행복하게 한다. 그러나 이내 작은 상자 속의 한국 맛인지 미국 맛인지 모를 조금은 뒤죽박죽인 맛의 음식은 모두 비워내기 힘들다.
많은 외국의 박물관과 미술관, 영화 촬영지의 배경이 되었다는 장소를 다녀 보면, 한두 곳만 봐도 식상하고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피로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책 속의 아름다운 스토리는 글 안에서, 아름다운 그림은, 그림 속에서 빛 날 뿐이라는 것을. 현장에 가서 눈으로 보고 체험하면서 알게 되는 적나나한 현실이다. 책 속에서의 그 사랑이, 애증이, 상처가, 아픔이, 전쟁과 죽음이 있었던, 내가 보고 싶고 느끼고 싶었던 그 시대의 흔적은 허무할 만큼 새로움으로 변질되거나 파괴되어 있다. 수 세기 동안 파괴되고, 변질되고, 더러는 완전 새로움으로 바뀐 상태에서 책 속에서 느꼈던 그 감동을 맛보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렇게 모든 것을 현실적으로 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이, 자신이 나이가 먹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이며, 그동안 가졌던 호기심이 별것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됨과 그동안 그토록 무미건조하고 불평했던 자신의 현실이 그래도 꽤 괜찮았던 일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시간들이기도 하다.
해외 자유 여행길에서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내 침실로 들어가는 순간, 내 코로 스며드는 오래된 나의 집과 가족들의 체취에 안도와 편안함을 느낀다. 떠나기 전에는 이 오래된 냄새에서 벗어나고파 했었는데, 어느 시간부터는 그 냄새가 그리워지기 시작하고, 그 냄새를 맡게 되는 순간, 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구나 하는 편안함을 느낀다.
참, 인간이란, 아니 늙은이의 시간이 그런 것 같다. 인간에게는 회귀본능이 있다고 하던가, 나이 들어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는 시간들인 것 같다. 그래서 지난 시간 동안 그토록 무료하고, 힘들고, 짜증 났던 그 시간과 그 자리가 그래도 내가 가질 수 있는 나에게 가장 편안한 자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이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가족에게도 이웃에게도 일터에서도 좀 더 겸손되이, 좀 더 성실히 노년의 시간을 보내게 하는 깨우침의 시간이기도 하다.
꼭 노년만 그러리, 그래서 현재가 힘들다면 지금의 나이가 몇이든 떠나 보라. 그리고 돌아와 보라. 자신의 자리가 그래도 가장 편안한 자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돌아와서도 그 자리가 편안한 자리라 생각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그 자리는 자신의 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
나이 들어 해외 자유여행을 한다는 것은, 들인 경비만큼 제대로 본전을 건져내지 못하는 여행이기도 하다. 우선 걸음이 느려진다. 혼자 생각하고, 선택하고 길을 찾아야 하는데, 지하철 역명을 볼 때도 몇 번을 본다. 한 번 보고 바로 확실하다는 자신이 안 서기 때문이다. 3호선이라고 화살표가 크게 붙어 있어도 자신이 없어, 한 번 더 확인을 한다. 그럼에도 더 확인을 하고 싶어 모르는 현지인을 붙들고 서투른 영어로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영어 발음이 이상해서, 비슷한 다른 역이 있다면 자칫, 그 역으로 가기도 한다. 그뿐 만이 아니다. 지하철 티켓도, 버스 티켓도, 박물관 티켓도 잘 간직한다는 것이 오히려 너무 꼭꼭 넣어두어서 찾지 못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사물보다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유명한 에펠탑 앞에서도 에펠탑보다 그 앞에서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는 젊은 연인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노인네를 보면, 차 보다 저 노인네가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지, 젊은 지를 생각한다.
시간 맞추어 유명한 위병 교대식을 보러 가서도 막상 교대식 그 자체보다 젊은 위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내 아들 군에서 보초 설 때도 저렇게 힘들었겠지, 하는 생각을, 우리나라 젊은 여행객들의 환한 모습을 보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딸 생각이 먼저 난다.
이렇듯, 나이 먹어 여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동안 내가 모르고 살았던,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상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내가 살아온 세상, 내가 지나온 시간을 보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그토록 기대하고 고대했던 먼 여행길에서 돌아와, 내 집이 그대로 온전히, 내 방과 거실에 TV가 놓여있고 그 속에서 내가 보다가 미처 다 못 보고 간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을 보고 안도하며 편안해한다. 어쩌면 나이 먹어 여행한다는 것은, 아직은 영원히 떠날 시간이 아니라는, 지금의 내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