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여행길에서 그 지역의 풍경,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등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젊은이의 키, 배가 감당 못하게 앞으로 튀어나온 사람, 어깨를 온통 드러낸 것도 모자라 젖꼭지가 보일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옷을 입은 젊은 여인, 장소도 시간도 가리지 않고 거리에서 딱 붙어 키스를 하는 젊은이, 주위의 멋진 건물보다 그런 인물들과 행위에 더 눈이 간다.
스코틀랜드 여행길에서 시내 무료투어를 받았다. 본인을 액션배우라 소개한 가이드의 나이는 좀처럼 가늠할 수가 없다. 그는 열심히 고객을 이끌고 다니며 안내를 한다. 그의 말은 스코틀랜드식 억양의 영어 발음인데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몇 개 없다. 그러다 보니 그의 말보다는 다른 것에 눈이 간다. 그의 행위뿐 아니라 옷차림에도 눈이 간다. 팔을 들었을 때 겨드랑이 부분에 옷이 찢어져 뚫려있다. 그것도 꽤 많이. 아, 이 가이드가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측은해진다. 이 사람은 결혼을 했을까? 미혼일까? 무료투어이지만 오늘 수고비는 작은 팁으로 그에게 주어질 것이다. 오늘 고객이 다섯 사람, 그가 두 시간 해서 벌 수 있는 금액이 얼마나 될까? 그는 오늘 오후에도 또 한 건의 일을 맡는 것인가? 등의, 여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을 추이해 본다. 이렇듯 노인들은 모든 것을 먹고, 입고, 자고, 오직 현실적인 것에 포커스를 맞추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은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참 힘든 일이구나. 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만고의 불변의 진리를 또 한 번 습득한다.
프랑스 아비뇽에 갔을 때이다. 그곳에서의 숙소는 ‘스튜디오’였다. 어느 여행카페에 주인이 본인의 ‘스튜디오’를 며칠 내어 놓는다고 올려놓았다. ‘스튜디오’라면 나는 사진관만을 생각했다. 사진관에서 방을 내 놓아? 궁금해서 댓글을 달았다. 스튜디오가 뭐냐고? 주인장이 답글을 주었다. 개인이 사는 원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며칠 방을 비울 일이 있어서 그 사이에 묵을 사람을 구한다는 거다. ‘스튜디오’란 개념이 그런 것이란 것을 그때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로 호텔을 이용했거나 기껏해야 민박 정도였다. 개인이 자신의 방 하나를 빌려주는 곳은 경험을 못해 봤다. 이것도 경험이다 싶어서 예약을 했다.
학생이 혼자 묵고 있는 숙소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골목길 사이에 있는 4층 집이라 하였다. 근처까지는 잘 찾아갔지만 모두 비슷하게 생겨서 어느 집인지 알 수가 없다. 생각다 못해 염체 불구하고 길바닥에서 학생 이름을 불러댔다. 그랬더니 한 곳에서 창문이 열리며 "이 곳이요 ~ 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다. 아가씨가 가리키는 곳으로 올라가는데 나선형 계단으로 좁고 가팔랐다.
힘겹게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서 문을 여는 순간!.. 두 늙은이는 침묵하였다. 위치는 구시가 한복판이라 다니기가 좋긴 했지만 늙은이들이 묵는 숙소로는 좀 그랬다. 암튼, 방의 구조가 서울에 사는 울 딸의 원룸 형식이긴 한데, 좀 더 작고 낡았다.
집주인은 그림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다. 집 떠나 이곳까지 와서 공부를 하는데 넉넉한 집안에서 유학 온 학생은 아닌 듯했다. 더러 아르바이트도 하며 집을 비울 때는 대여도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 하나 보다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딸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에게 사흘간 방을 빌려주고받는 돈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나는 사흘 동안 매일 대청소를 하듯이 집안 청소를 했다. 특히, 싱크대를 열심히 치웠다.
우리가 집을 비워야 할 마지막 날에 맞추어 학생이 돌아왔다. 캐리어를 끌고 역으로 가는 길에 배웅하러 따라 나와 주었다. 나는 저만치 가다가 동행친구 몰래 아주 작은 돈 한 장을 학생의 손에 쥐어 주었다. 학생은 당황해서 뿌리치려고 하는 것을 손에 힘을 주어 말렸다. 정말 소액이었다. 주고 나서도 마음이 부끄러웠다. 안 주니만 못했을까 싶어서였다. 그냥 가난한 엄마의 마음이었다. 나이를 먹어 여행하면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이 들어 여행을 가면, 젊은이들보다 훨씬 깊은 친화감으로 빠르게 사람을 사귄다. 영어가 안 되어서 사람을 못 사귈 거란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세계의 모든 노인은 공통적인 것이 있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혜안이다. 수십 년을 거쳐서 많은 사람들, 많은 사회적인 상황들을 겪으면서 쌓인 공동체 마음이다. 언어도 그 속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스 여행 때이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올라 가서다. 고대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지만 흙먼지가 흩날리는 넓은 폐허 같은 언덕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정말 많았다. 그곳에 작은 음수대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을 마시고자, 물을 받아가고자 손에 빈 물병들을 쥐고 있었다. 당연히 줄이 줄지 않는다. 그때였다. 뒤에서 커다란 소리로 뭐라고 외치며 뚱뚱한 그리스 아줌마가 내 앞에 와서 섰다. 아줌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계속 쏟아낸다. 그 열정에 나도 모르게 아줌마를 똑바로 쳐다봤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아줌마가 눈이 마주친 순간 잠시 말을 멈췄다. 잠시, 아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키도 작고, 눈도 작고, 피부도 다른 동양인 할머니가 자신을 빤히 보니 황당했나 보다. 순간,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거렸다. 아줌마가 내 마음을 읽었다. 자기 말을 지지해 준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부드럽고 긍정적인 눈 빛으로 내 눈을 보며 계속 “$%^&*(@#$%)(_%” 말을 쏟아 한다. 나도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가 쏟아낸 말이 그리스 말인지, 이탈리아 말인지 모른다. 그리스 아줌마인지, 이탈리아 아줌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아는 들었다.
"물병을 몇 개씩이나 들고 물을 받으니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뒤의 사람들이 물을 먹을 수 없다. 이래서 되겠느냐? 물은 받지 말고 마시고만 가라." 아니었겠는가? 아줌마의 외침이 끝난 후, 바로 내 앞에 네 명의 가족들이 각자 커다란 물병을 들고 있었는데, 한 사람의 물병에만 물을 받아갔다. 떠들던 뚱뚱한 아줌마는 제 할 일을 다한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내 어깨를 힘주어 누르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