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시집식구를 무서워 하는가.

12년 전 일기

by 칠십 살 김순남

시집와서 35번째 차리는 설 차례상,

오로지 책 읽는 것만 취미로 가지고 있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직장만 다니고 있던

26살짜리 생짜배기 처자가 ,,

46살 된 홀 시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 그것도 맏며느리로 들어와서, 35년,,

시아버님의 얼굴은 누렇게 바랜 사진속에서만 뵈었을 뿐이고,,

그 분에게 바치는 차례상을 시어머님과 함께 차려왔다.

병적으로 깨끗하신 어머님, 털고, 닦고, 털고, 닦고, 만들어 먹고, 닦고,,

오직 그것이 자신 인생의 전부인양 ,,

'그렇게 빠니까 옷이 항상 누리끼리하지. 그렇게 하니까, 때가 하나도 안 빠지지'

빨아서 널어놓은 옷들을 다시 거둬서 물속에 풍덩넣고는 '소매뿌리 다시 문대라'

'설겆이 그릇은 요렇게 엎어놔야 하고,, 냄비는 이렇게 얹어놔야하고.. '

'국맛인지, 맹물인지 모르겠다.'

이런 성품의 어머니와 차례상을 차릴 때 , 그 곤욕스러움은 말로 할 수가 없다.

물론, 지금은 함께 한 세월이 자그만치 '서른다섯해'

그러려니... 하지만..

허긴, 지난 세월같기야 하려고,, 얼마나 편해졌는데..

아직도, 살림에 손을 놓지 않으시는 어머님,, 아니, 살림을 장악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으리

차례상 준비도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시는 분..

내 나이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전을 부칠때 "소금 더 넣어라. 색깔이 너무 노랗다.

기름 조금만 부어라. 와 이래 태우노. 니는 아직도 간을 못 맞추나. "


그러다가 손아래 동서가 어쩌다 오면은 그 추임세는 더 높아진다.

하나있는 손아래 동서는 외국에 나가 생활을 오래해서 어쩌다 오게 된다.

그럴 때는 나에게 하는 잔소리가 더 많아진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손아래 동서가 안 왔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손아래 동서들이 와서 도와주지 않는다고 속상해 하는데,

나는 안 오는게 더 도와주는 거니까.. ~ㅋ

명절 당일날, 사촌 시동생가족들이 차례를 지내러 올 때도, 부쩍 그 추임새가 더 하다.

그 사촌시동생과 동서들은 모두 나보다 한창 나이가 어리다.

그런데, 제일 나이 많은 며느리를 그들이 보는데서 가차 없이 핀잔을 주는데..

그럴 때는 솔직히, 뒷머리가 뻣뻣하게 올라오는 통증같은 걸 느낄 때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혼자서 자식을 키워왔다는 여자 특유의 위세, 혹은 권위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기도하다.

명절 하루전에 왼종일 음식을 만들고, 명절 당일은 사촌들과 함께 차례지내고, 그리고 돌아가면

저녁에는 시누들 가족들.. 시누들도 이제는 자식들이 출가를 하게되니, 출가한 딸, 사위까지 함께 오니,

식구가 만만치 않다.. 그 뒷풀이 끝내고, 가면, 다음 날은 시이모님들 놀러오시고..

그랬던 것이.. 이제는 슬슬,,시이모님들, 나이 연로해서,, 안 오시게 되고.. ㅋㅋ

서울서 항상 내려오던 사촌도련님들, 동서들도,, 큰어머님 돌아가시니까, 한분 두분 빠지게 되고..ㅎㅎ

오는 사람들이 세월따라 한사람 두사람 줄어드니,,,

솔직한 말로, 좀 편안하다. 따라서, 준비하는 차례상도 조금씩 작아지고 있으니..

암튼, 이런세월이 서른 다섯해가 가고,,

올해는 새식구가 늘었다. 바야흐로 나도 시어머니가 되었다는 말..

그래서, 올해는 삼대가 차례상을 만드는데..

나는 바짝 긴장했다..

새며느리보다, 헌 며느리가 더 긴장했다는 거.. 후후..

누가 옆에 있으면 보란듯이 더 위세를 떨치며 잔소리 하시는 그 습관에..


새해 절을 올리며, 남편이 어머님에게 한마디 했다.

"새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는 잔소리 좀 그만 하시고.."

훗훗.. 옆에 있던, 가족들이 모두 웃었다..

이제 이렇게 너스레를 떨 만큼,, 남편도 나도 나이를 먹었나,,

그래도, 나는 절대로

예쁜 내 며느리에게는 내가 겪었던, 그런 씨잘데 없는 고통은 주고 싶지않다.

삼일간의 명절을 치루고, 돌아갈 식구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고,

나 또한 제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궁시렁 궁시렁, 앞도 뒤도 안맞는 말을 즉석에서 끄적여 본다.

(큭,, 시어머니, 컴퓨터 할 줄 모르시니까....)




12년 전 오늘 일기를 보았다. 블로그에 비공개로 올려놓은 글이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어머님이 돌아가신지도 6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나는 시집시구들 눈치를 보는가. 블로그에 노출시키지 못하고 그나마 시집시구들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거라 생각되는 브런치에 올리니,...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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