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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점휴업 Sep 13. 2023

6일/7일째 아시겠지만 여기도 같아요

: 10박 11일 시골언니@강릉


오늘의 일정

6일째

-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지옥만세> 관람

- 경포호/경포습지 산책

- 프로그램 동료들과 밥 지어먹고 (푹 자버림)

7일째

- 제비밭에 다기 사고 숲해설 듣고 풀채집

- 프로그램 동료 인터뷰 촬영

- 바다유리로 모빌 만들기

- 무명에서 한영원 감독 <되돌리기> 관람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 놓인 <지옥만세> 포스터. 이 영화 진짜 보셔야 됨
경포호에는 오리가 비둘기처럼 걸어 다닌다 앞으로도 편히 다녀야 해
경포호 끝머리에 가면 연꽃밭이 있다 꽃잎을 떨어뜨린 머리? 부분이 해바라기처럼 모두 해를 보고 있음

일기를 처음에는 쓰려고 노력해서 썼는데 이제는 내 기억이 사라질까 봐 걱정이 되어서 쓰게 된다. 프로그램 동료와 함께 전자책을 읽으러 찾아간 카페가 난데없이 소금빵이 맛있어서 두 개나 먹어 치우고 신영에 갔다. 신영은 강릉에 멀티 플렉스가 들어서면서 기 명백을 잇지 못할 뻔했지만 강릉시네마떼끄 멤버들이 힘을 모아서 운영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월요일 11시 상영인 것을 치더라도 나와 동료만 둘이서 영화를 그것도 이렇게 재밌는 영화를 보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그것은 또 접어 두고서라도 영화가 무척 좋았고 신영 의자도 엄청 좋았기 때문에 다시 강릉에 온다면 신영 회원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 이후에는 경포호와 습지를 산책했다. 여름에 오면 정말 풀이 무성해서 풀빛 바다를 볼 수 있는 마음이었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무척 휑해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바다유리를 주워서 만든 만다라트 이 각각의 재료를 꺼내서 모빌을 만든다
영화를 보기 전에 정취를 즐기는 동료 자는 거 절대 아님

오늘은 아침부터 밭에서 일을 하느라 해를 많이 봤다. 풀마다 기능이 있고 그것을 아는 것만 해도 많은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풀은 기본적으로 벌레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해서 염증에 도움이 되는 약성이 있다고 한다. 모기 물리면 일단 풀을 비벼 본다거나 갱년기에 좋은 구절초, 우울감 해소에 도움이 되는 세인트존스와트 같이 이름도 생소했던 풀의 효능을 매일 배운다. 야생의 동물도 그런 대략의 효능을 알아서 아플 때는 본디 풀을 찾아 먹는다고 한다. 내가 자연으로 귀의하겠다는 아니면 전업농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자연으로부터 괴리된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것이 영속 가능한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인지. 강릉에 와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자주 하게 된다. 어쩌면 그 대답이 감당하기 어려울까 봐 피한 듯한데 그 질문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용기를 조금 훔치기도 한다.

유민아 감독의 다큐를 어제 본 뒤로 구체적인 활동 이력을 직접 소개해 주셨다. 저녁에 무명에서 만난 한원영 감독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 특유의 내러티브가 있는 듯하다. 중등교육 과정을 서울에서 이수하거나 영화에 대해서 그곳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수적 열세로 인한 유니크한 감성이 실제로 있다는 게 느껴졌다. 바다유리를 만지는 동안 바다에 사람이 쏟아내는 쓰레기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기후위기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 밀도 있게 생각한 10일이 될 텐데 아직은 혼란스럽다. 물론 개인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 것도 알고 그게 뭔가 큰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만 으레의 내 성격은 결국 할 수 있는 걸 뭐라도 해야 버티는 성격이라 이번에도 뭔가는 할 것 같다 당장에 텃밭을 신청하고 퇴빗간을 만들어 음식물 쓰레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듯하다.

무명에서의 상영 이후 대화도 무척 좋았다. 강릉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수도권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또래 여성들의 이야기라니 어딜 가서 쉬이 들을 수 없는 건 확실하다. 어디 가나 사실은 똑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나 싶다. 서울에 있기 위한 핑계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게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는 걸 확인하려고. 좋은 점은 예상이 불가능하다. 보통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성격이라면 더욱 그러하지만 나는 어떤 부정적이고 힘든 점이 있나 궁금했는데 그게 어딜 가나 같다는 답변을 받아서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메인스트림 또는 그 곁가지에 지낼지 아니면 지역으로 이주해서 힘들지만 나의 무엇인가를 할지 결정할지 분기가 온다는 말도 좋았다. 결국 선택의 문제이고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되려 와서 방법을 여러 가지 알게 된 건 한 번에 이주를 하기보다는 체류시간을 늘리는 방법도 있고 네트워크의 필요성이 절절한 때에 나도 구성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몇몇 만났다는 점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앞으로의 기간 동안 내내 방바닥에만 누워있어도 뿌듯할 시간이다. 그런데 프로그램 동료들과 매일 밤 하루를 복기하며 소감을 나눌 수 있다니 일기에 쓰기는 민망하지만 기쁘고 조금 더 이어졌으면 하는 시간이라 벌써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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