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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키베이비 Feb 06. 2018

워라밸이 낳은 오키나와 과자 | 밀키베이비

밀키 가족의 아트 여행기



소비의 굴레

월급이 들어왔다는 문자에 안도하기를 몇 년째. 보이지 않는 굴레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없어 할 수 없는 것들을 돈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빈번한 외식, 도우미, 만들기보단 사는 게 빠른 모든 것들을 구매했다. 소비가 계속될수록 내 시간은 빠르게 줄어갔다. 양말에 난 작은 구멍을 바느질할 여유가 없을 때도 있었다.


문제는 이 길을 벗어나면 생존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거대한 무력감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손으로 뭔가를 만들며 즐거워하고, 가족들에게 여유롭게 대하고, 멍하니 있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순간이 필요했다.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생산, 즉 창작이었다. 붓을 들어 밀키베이비라는 이름으로 그림과 영상을 만들고, 아이를 위해 작은 소품들을 만들며, TV 리모컨보다 책을 더 자주 집어 들었다. 진짜 시간을 다루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갔다. 아직도 실패의 연속이다. 하지만 내가 삶에서 추구하는 바는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도 극히 적어졌다. 


여행에서 찾은 삶의 방식

냉혹한 자본주의 굴레를 벗어나 살아가는 방법을 '여행'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집과 같이 편하고, 남이 보기에 그럴듯하고,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여행은 적어도 나에겐 의미가 없어졌다. 나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보다 더 오래 살아가야 할 내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기술들이 뭘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것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한 전통 과자점은 하루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양이 충분치 않다. 금새 품절이 된다. 현대의 기준에서 보면 무척 비효율적이다. 공장에서 더 빨리, 많이 찍어내면 더 많은 물량을 팔 수 있다. 그런데도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내는 전통의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담아 만든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빠르게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화학적인 첨가를 덜해도 된다. 그래서 온전하게 재료의 맛을 살릴 수 있다. 만든 사람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 자부심이 가감 없이 전달된다. 그 모든 것이 담긴 과자를 한 입 베어 문다. 조금 삐뚤빼뚤하게 잘린 과자에서, 오키나와 야채와 흑설탕이 섞인 달콤한 과육이 흘러나왔다. 여행이 끝난 지 한 달이 넘는 지금까지도 그 맛은 우리 가족의 뇌리에 선연히 남아있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중용을 지킨다는 것이다. 일이 과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게 되지 않게 하루의 일감을 정해놓은 것이 그렇다. 돈을 더벌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서 쓸데없는 소비도 없다. 소위 '워라밸'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나는 수년째 디지털로 디자인 일을 하면서도 그림만은 아날로그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천천히, 적게 만들더라도 온전히 시간과 노력을 담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즐겁기 때문이다. 이 작은 가치를 계속 지키고 싶다. 나아가 내가 들인 정성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전달되면 좋겠다.



Inspired at 류쿠왕조과자점 키판텐,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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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드로잉 #여행일러스트 #여행그림에세이




밀키베이비 작가 김우영 

글 쓰는 일러스트레이터, 영상작가. 17년 7월, 그림 에세이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는 엄마입니다만’ 을 출간했다. <경남국제아트페어>,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글로벌 아트콜라보 엑스포> 등 국내외 다수의 전시에 그림을 출품했다. <삼성>을 비롯한 기업 및 미디어에 일러스트 칼럼을 연재중이다. <디아티스트매거진>에는 ‘디자이너 엄마의 창의적인 놀이 레시피’를 연재하며 아이와의 아트놀이를 연구하고, <서울문화재단>의 영상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어 일러스트가 가미된 '가족 아트여행'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인스타그램10K달성! @milkybaby4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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