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환자 생활

by 은하수별바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또래에 비해 턱관절이 덜 발달했고 치열도 고르지 못했던 나는 질긴 음식이나 해산물을 씹는 데 유독 애를 먹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불편함은 선명해졌다. 어떤 음식이든 천천히 오래 씹는 습관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인 듯싶다. 어쩌면 먹는 것 자체가 불편해 잘 먹지 않았고, 그 탓에 지금처럼 마른 체형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나름의 가설도 세워본다.

결국 구강 구조 검사를 위해 대학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내 턱은 안으로 들어간 형태였고 치열도 엉망이었다. 부모님은 턱 교정과 치아 교정을 시작하기로 결정하셨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치과 특유의 냄새는 예나 지금이나 적응하기 쉽지 않다. 어린이들에게는 공포의 상징인 그곳에서 나는 영상 촬영과 본뜨기,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 등 초반 적응 과정을 거쳤다. 다행히 턱을 넣는 것이 아니라 빼는 교정이라 과정이 아주 고되지는 않았다. 고정식이 아닌 마우스피스 형태의 장치를 평소에 착용하고, 특히 잘 때는 꼭 끼라는 선생님의 당부를 성실히 지키는 모범적인 환자였다.

매달 반복되는 진료 끝에 어느덧 턱 치료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치아 교정이라는 더 큰 숙제가 남아 있었다. 기존 대학병원은 집에서 너무 멀어 이동이 힘들었기에, 아쉽지만 남은 치료는 집 근처 치과에서 이어가기로 했다.

새로운 병원에 적응하는 과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전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덕분에 의료진과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었다. 촬영과 상담을 거쳐 브래킷과 와이어를 부착했다. 이쯤 되니 뒤로 넘어가는 진료 의자와 중간중간 들려오는 물 양치 안내 멘트가 내 집처럼 익숙해졌다.

치과 생활에 능숙해질 무렵, 병원이 유독 바빴던 어느 날이었다. 교정 치료는 급한 건이 아니었기에 가만히 순서를 기다리며 의사 선생님과 치위생사 분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전문적인 용어를 완벽히 설명할 순 없어도, 치아 번호나 대화의 흐름만으로 다음에 어떤 처치가 이어질지 눈치껏 예상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치료는 고무줄 단계에 접어들었다. 환자가 스스로 관리할수록 치료 기간이 단축되는 단계였기에, 나는 내 소임을 다하며 성실함을 증명해 보였다. 다행히 나이가 어려 치아 공간에 여유가 있었기에 발치는 피할 수 있었다. 대신 잇몸에 스크루를 심었는데, 비주얼은 조금 섬뜩했지만 교정 첫 달의 와이어 조임보다 아프지 않아 다행이었다.

마침내 유지 장치를 부착하는 날이 왔다. 그 장치는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내 아랫니 안쪽에 묵묵히 붙어 있다. 교정이 끝난 이후로는 치과에 갈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렇다고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치과 생활에 완전히 동화되어 성실히 치료에 임했던 그때의 내 모습이 가끔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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