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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Dec 14. 2023

1종 보통 장롱면허입니다만.

초보인데 아기까지 타고 있어요.




화장대 맨 아래칸 서랍을 열어 빛바랜 초록 빈폴 반지갑을 꺼냈다. 지갑 카드칸에는 다소곳한  스물세 살 여인의 사진이 꽂혀있다. 보통 1종 운전면허증이라는 제목과 함께..




"그래도 갱신하기 전에 써먹는구나."


"내가 이럴 줄 알고 힘들게 1통 보통 트럭으로 운전면허를 딴 거 아니겠어."


"경차 운전하는 건 1종 보통 필요 없는데.. 굳이.."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꼭 그렇게 얘기해야 속이 후련하니!"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6개월을 사용하고 나니 복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주변에 아이를 부탁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생후 6개월이 되자마자 영아전담어린이집에 간 첫째. 운 좋게  TO가 있는 영아전담 어린이집이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고 아이는 하루 1~2시간씩 적응하며 조금씩 시간을 늘린 덕분에 복직 일주일 전부터 어린이집 종일반에 무사히 있을 수 있었다.




이제 필요한 건, 빠르고 안전한 출퇴근 운전실력.




대학을 졸업하고 호기롭게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했다. 기왕 하는 거 1종 보통으로 취득해야 활용도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트럭으로 시험을 봐야 기능 시험에서 정지선이 잘 보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접수한다.



"1종 보통으로 할게요."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었다. 자가용도 없었지만 그 자가용을 운전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지만 부모님 두 분 모두 운전면허가 없으시다. 가끔 지인의 차를 얻어 탈 때면 창문을 내다보며 우리 차인 양 괜스레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지만 이내 차 안에서 어떻게 있어야 할지 몰라 조마조마 발을 동동 굴렸다. 차 문을 여는 것부터 시작해 안전벨트를 어떻게 메는지, 주행 중에는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눈알 굴리며 따라 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만의 차가 생겼다. 중고차 매매업을 하는 신랑 친구에게 천만 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구입한 경차, 비록 옵션 하나 없는 깡통차였지만 영롱한 은색빛깔은 반짝하며 인사를 건네주었다.



"잘 부탁해 융파크. 이제부터 우리 잘 지내보자."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복직일에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 남편이 도로연수를 해준단다.



"가족끼리 운전 배우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에이 난 다르지. 난 베스트거든."




생각보다 준수한 남편의 티칭실력에 감탄하며 세번 만에 도로연수를 끝냈다. 이제 나 홀로 싸움만이 남았다.

한적한 공원 주차장에서 T자 기능 코스를 생각하며 무한반복 주차연습을 하고, 회사를 비롯해 자주 가는 마트와 소아과로 가는 길을 운전하며 익혔다.



'완벽해.'








주차자리가 없으면 조금 먼 곳에다 주차하거나 유료 주차장에 대면되고, 차선변경을 못하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돌아오면 된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운전하면 모두가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소소한 운전철학이다.



7년 동안 함께하며 고생했던 나의 융파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직 첫날 회사 주차장에서 다사다난한 운전 인생이 시작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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