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상형은, 아빠랑 정 반대인 사람

by 은하


"아빠 같은 사람 재미없어, 술 한잔 못하고, 나가서 같이 놀지도 못하고, 키도 작고."


엄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이야기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하지만 엄마가 집을 나가고, 장녀인 내가 아빠 옆에서 지내보니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는 정말 술 한잔 안 하는 분이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며 친구들과의 모임도 줄이셨다. 집에 오면 뉴스만 보고, 주말에는 집에서 쉬는 게 전부였다. 좋은 아버지였지만, 부부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재미없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 알겠어.'



그때 결심했다.

나는 아빠랑 정반대인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어쩌면 내가 아빠 반대인 사람을 찾고 싶어 했던 이유는, 엄마의 과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엄마처럼 사는 삶을 피하고 싶었고, 나도 엄마처럼 될까 봐 무서웠던 것 같다.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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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키는 무조건 나보다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굴도 크고, 몸집도 크고, 다리통도 나보다 두꺼워야 했다. 아빠가 엄마보다 키가 작은 게 엄마에게는 스트레스였던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재미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술 한잔 같이 하면서 놀 줄 아는 사람 말이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모든 걸 우선시하느라 정작 부부로서의 재미는 놓쳤던 게 아닐까.


무엇보다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평생 누군가를 챙기고 이끌어온 장녀에게는 절실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첫째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첫째로서 너무 힘들었는데, 남편까지 첫째라면 집안이 어떻게 돌아갈지 뻔하지 않겠는가. 책임감 강한 사람끼리 만나면 서로 눈치만 보다 지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바로 우리 신랑이다.








회사 선후배로 만났다. 1년 먼저 입사한 선배였는데, 리더십도 있었고 차도 있었다. 회식 때는 분위기 메이커였고, 야유회에서는 즐길 줄 아는 사람, 아빠와는 정반대였다. 나이 차이도 딱 3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자 형제 두 명 중 둘째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형이 하나 있는 집이었다. 완벽했다. 첫째의 부담감도 모르고, 막내의 응석도 없는 중간 아이. 내가 찾던 바로 그 조건이 아니었을까.


2년 정도 만나면서 회식도 많이 했고, 야유회도 함께 갔다.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더욱 확신이 섰다. 이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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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단순했다. 아빠의 반대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기준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만큼은 분명했으니까.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은 여전히 쿨하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가끔 술 한잔 하며 이야기하는 것도 즐긴다. 나를 이끌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의지하기도 한다.








아빠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아빠도 나름 괜찮은 남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엄마와는 맞지 않았을 뿐이다. 부부라는 게 참 어려운 관계구나 싶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부모님의 관계를 보며 "저런 건 싫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반대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게 뭔지는 확실해질 테니까.



다만 한 가지만은 기억하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반대를 찾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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