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엄마와 시어머니가 함께 만난 건 딱 한 번이었다.
정식 상견례도 아니고, 그냥 얼굴 한번 보자는 자리였다. 엄마는 그날 이후 우리의 어떤 행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혼식도, 돌잔치도, 명절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아무 데도 오지 않았다.
그땐 아직 이혼이 된 상태가 아니었고, 엄마는 세상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숨듯이'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나로선 찾을 수도, 부를 수도 없었다. 전화번호도 모르고, 주소도 알 수 없었다. 엄마가 우리 곁에 없다는 현실은 어느 순간부터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슬프다는 감정조차 무뎌진 채로.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법적으로도 엄마와 아빠는 남이 되었지만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서류만 바뀐 거지,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엄마 없는 가족이었으니까. 신랑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늘 미안했다. 장모 없는 사위. 말만 들어도 허전한 자리 하나가 생기는 말이다.
처가댁에 가면 장모님이 밥도 차려주고, 아이도 봐주고, 쉬게도 해준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 집엔 그런 게 없었다. 나는 그 자리를 해줄 수 없었다. 친정은 안부를 위해 가는 곳이지, 몸을 편히 두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더 바빠진다. 밥 차리고, 치우고, 챙기고. '딸'이라는 위치보다는 그냥 '여자'로 움직여야 하는 공간. 가만히 앉아 있는 걸 허락받지 못한 자리였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 집에 있는 게 더 편했다.
그래서일까. '친정'이라는 말만 나와도 작아졌다. 괜히 눈치를 보게 되고, 신랑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신랑에게 큰소리를 못 내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 사람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지점이 있다는 걸 안다.
회사에 나와 비슷한 처지의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친정 얘기만 나오면 작아져. 괜히 내가 잘못한 것 같고, 아무 말도 못 하게 돼."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우리 딸에게는 '친정엄마'라는 자리를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요리를 잘하지 못해도, 대단한 걸 가진 게 없어도 상관없다는 걸 이제 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 딸이 힘들 때 전화를 받아주는 것. 손자가 보고 싶어 할 때 달려가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런 평범한 존재가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딸이 결혼해서 힘들 때, "엄마한테 가자"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엄마로. 그렇게, 결혼하고 처음 엄마가 되면서부터 내가 받지 못했던 그 따뜻한 자리를 나는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내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내 딸만큼은 '친정엄마 없는 며느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