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무조건 아들

장녀로 살아낸 시간의 무게, 그리고 다짐

by 은하


첫째라는 자리는 내게 늘 무거운 옷 같았다. 벗을 수도 없고, 작다고 투정 부릴 수도 없는. 부모님의 기대라는 이름으로 어깨 위에 올려진 그 옷을 입고, 나는 일찍이 어른이 되어야 했다. 공부는 당연히 최상위권,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 자리. 그게 내가 알던 첫째의 법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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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래된 친구들과 만났다. 쌉싸름한 커피 향이 피어오르는 카페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너도 그랬어?'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던진 그 질문에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요즘 말로 케이장녀의 삶이 얼마나 숨 막히는 자리였는지,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의 어린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네가 알아서 잘해줄 거라 믿는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속에서도 부모님이 내게 건넨 그 말. 나는 그때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 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가끔 숨이 막혔다. 믿음이라는 이름의 책임감. 그것은 때로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었지만, 때로는 나를 짓누르는 돌덩이이기도 했다.








어느 가을밤, 삶에서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 찾아왔을 때도 나는 부모님께 말했다. "괜찮아요." 결국 도움을 받았고, 함께 울었고, 다시 일어설 힘도 얻었지만, 그 '괜찮다'는 말만큼은 내 안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반사어가 되어버렸다.



어린이답게 어리광 부릴 수 없는 케이장녀. 가끔은 목이 터져라 울고 싶었고, '도와줘'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나는 늘 스스로를 다독이며 뒤따라오는 동생들을 지켜야 했다. 물론 모든 첫째가 나와 같은 건 아닐 거다. 사람마다 느끼는 무게와 상처의 깊이는 다르니까.








그런 내가 결혼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속삭인 말이 있다.

'첫째는 무조건 아들이어야 한다.'

아들이라면 작은 어리광도 그대로 받아주어 질 거고, 실수에도 따뜻한 다독임이 있을 거라 믿었다. 첫째 딸이었던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것들이 아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주어질 거라 생각했다.


허니문 베이비로 찾아올 뻔했던 작은 생명은 아픈 기억으로 남았지만, 결국 내 품에 안긴 첫아이는 아들이었다. 마치 내 간절함을 들어준 것처럼.



지금 그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올 때면 툴툴거리며 말한다. "엄마, 오늘 간식은 뭐야?"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내 곁에 가만히 서 있는 그 아이. 간식을 챙겨주면서 나는 그 어깨를 살짝 토닥이며 말한다. "오늘 하루 고생했어." 그 말 속에는 케이장녀였던 내가 꾹꾹 눌러 참아야 했던 울음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가 받지 못했던 위로를, 내가 듣지 못했던 '고생했다'는 말을 그 아이에게는 온전히 주고 싶다는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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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장녀로 살아낸 긴 시간 끝에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실수해도 괜찮아. 눈물 흘려도 괜찮아."

그 다짐이 내 아이들에게는 자유가 되고, 나에게는 작은 위로가 된다. 늦었지만, 나도 이제야 그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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