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근속하면 해외여행을 보내준다고 했다.
그 여행을 다녀오고 퇴사하려고 했었는데,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혼자였다.
친정 엄마도 없고, 주변에 기댈 곳도 없이 일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편 회사 주차장에서 벌어진 우리만의 기막힌 릴레이다.
저녁 퇴근 후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것까지는 그래도 일상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밤 11시에 퇴근하는 남편, 그리고 그 시기 한창 바쁜 나의 회사. 자는 아기를 카시트에 조심스럽게 태우고 남편 회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퇴근하는 남편 차에 아이를 옮겨 맡기고, 나는 그대로 돌아서서 다시 새벽까지 야근하러 회사로 들어갔다.
도대체 이 짓을 얼마나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아이를 낳으면서 설계 업무로 부서이동을 했다. 난생처음 해보는 설계일.
'설계가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시작부터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 나는 노가다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옆에서는 단축키로 술술 작업을 해내는 사람들. 당연히 일정을 못 맞췄고, 실수도 잦았다. 무섭지만 인간미 넘치는 상사는 '회식으로 달래준다'며 술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고마운 마음 반, 죄송한 마음 반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나면 다음 날은 또 주말출근이었다.
주말 출근이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화장실 칸막이에 기대어 소리 없이 울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일하고, 또 혼나면 다시 화장실로 가서 눈물을 훔치고 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물어 물어, 하나씩 알아가며 배운 설계였다. 도면 그리기. 내 전공도 아닌 걸 어떻게 알겠나. 누군가는 '회사 생활이 다 그런 거 아니야?'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 분야를 전공하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들어온 사람들과 달리, 나는 중간에 갑자기 떨어진 낙하산이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어느덧 퇴사 전쯤엔 그럴싸한 타이틀을 하나 달고 다니게 되었다. 대기업의 공무원이라는 별명에 맞게 요령도 생겼고, 짬밥도 생겼고, 연차도 올라갔다. 하지만 상한선이 있던 직군이었기에, 그만큼 월급은 적게 받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내 아이들만큼은 차근차근 정규과정으로 살고 배우고 올라가는 걸 겪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게 내 바람일 뿐, 어찌할지는 결국 아이들 몫이겠지만.
가끔 씁쓸했다. 남들은 전공으로 다 배우고, 선배 후배 동기들과 으쌰으쌰 하며 일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들어와 눈칫밥 먹으며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주변 사람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어떻게든 버틸 텐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인데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자꾸 어려지니까 점점 더 비참하고 난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걸 학벌 자격지심이라고 해야 할까, 나이 자격지심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마음이었다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서로 위로가 되었다.
'열심히 일하면 돈을 더 받게 된다'는 말이 있지만, 적어도 내가 있었던 곳에서는 오히려 "돈 받는 만큼 일한다"가 더 맞는 것 같다. 이미 정해진 방 안에서 올라갈 수 있는 꼭대기층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니까.
그곳에서 나는 용의 꼬리였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부러웠을 테고, 심지어 회사 내에서도 이전 부서 사람들은 내 부서 이동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안에서 10년 넘게 자존감이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코로나만큼은 비켜갈 수 없었다.
아이들 육아도, 그리고 내 마음도.
그렇게 바랐던 희퇴는 결국 이루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의 시대가 지나가고,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남은 육아휴직을 모두 써버리고 나서야 퇴사를 결심했다. 2006년 7월 19일. 스물셋의 내가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이 회사를 2021년 겨울에 마무리했다. 15년 근속상을 받으면서. 20년이면 해외여행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남편과 1년 입사 차이가 났던 우리는 '둘이 합쳐서 크게 여행 가자'라고 했었는데, 그건 끝내 이루지 못했다.
올해는 남편의 입사가 20주년 되는 해다. 7월에 입사한 남편이니까 이제 며칠 뒤면 정말 20주년이다. 이상하다. 하염없이 흘러간 시간도, 남편과 함께 쌓아온 시간도, 내가 가족을 이루고 새롭게 살아온 이 모든 시간이 새삼 이상하게 느껴진다.
벌써 마흔이 넘었다니.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고 한다. 몇 군데 안 다니는 아이들 학원비에도 벌써 허리띠가 조여지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다르게 살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도 벌고, 당당하게 일하겠다. 무엇보다 나답게 살면서 가족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