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쓰는 이유

단단하게 만드는 작은 기록

by 은하


요즘의 나는 매일 쓰지 않는다. 쓰지 않는 날도 많다. 그렇다고 글을 그만두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전엔 꾸준함이라는 단어가 늘 무거운 숙제 같았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괜히 뒤처진 것 같고, 흐름이 끊겨 다시 시작하기가 어려울 것만 같았다. 그 강박 때문에 오히려 오래 쓰지 못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매일 쓰지 않아도, 멈추지 않으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손으로 글을 쓰지 않는 날에도 내 안의 생각은 멈추지 않고 쌓인다. 아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길을 걷다 문득 떠오른 감정, 괜히 마음에 남아 자꾸 되감기 되는 장면들. 그것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고여 언젠가 문장이 될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는다. 글은 억지로 쥐어짜 내는 게 아니라, 마음의 물꼬가 트일 때 조용히 흐르게 두는 것이 더 오래간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더 이상 잘 써야 한다는 타인의 기준으로 내 글을 보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의 글이 오늘의 나를 배반하지는 않았는지.' '글이 나를 억지로 꾸미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담아내고 있는지.' 그 기준 하나면 충분하다. 쓰는 일은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꾸기보다는, 흔들리는 삶을 단단하게 붙잡아 주는 닻과 같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가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게 이어지니까. 그 연결감이 나를 조금 덜 불안하게 만든다.




가끔은 아무 말도 쓰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럴 땐 억지로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쉬어가는 것도 쓰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글이 쉬는 날에는 복잡했던 마음이 대신 정리된다. 그리고 비워진 자리에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차오른다. 그 자연스러운 흐름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맞다.







이제 글을 어떤 목표를 위해 쓰지 않는다. 완성도나 사람들의 반응, 눈에 보이는 결과를 앞세우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쓴다. 엄마로, 아내로 살며 바쁜 일상 속에 흘려보내기 쉬운 작고 느린 감정들을 조용히 주워 담기 위해 쓴다. 아마 앞으로도 매일 쓰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글은 이제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삶의 방식이 되었으니까.



오늘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아직, 온전한 나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를 잃지 않고 지켜내는 기록, 그게 내가 오늘도 멈추지 않고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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