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마음이, 글이 되어 돌아왔다
하루가 끝나갈 때면 마음에 작은 잔여물들이 남는다. 별일 아닌 순간인데도 오래 귀에 맴도는 말투, 괜히 서운했던 장면, 그리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삼켰던 생각들. 그런 마음들이 부유물처럼 떠다닐 때면 조용히 메모장을 연다. 그날 있었던 일, 스치듯 지나가는 감정들을 몇 줄이라도 적어두면 소란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돌아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종이에 무언가를 쓰는 아이였다. 밤마다 다채로운 꿈을 꿨고, 그 꿈이 너무 재미있어서 잊히기 전에 꼭 적어야만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꿈이 사라지기 전에 글로 붙잡아두던 그 시절. 하지만 야속하게도 적는 순간부터 꿈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희미해지곤 했다. 그럼에도 계속 썼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게. 그 간절했던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 글쓰기의 가장 깊은 뿌리를 이루고 있다.
처음엔 그저 기록이었다. 메모와 일기, 그날의 짧은 한 줄.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도, 닿을 거란 기대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기록들이 방향을 가지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독백 같던 짧은 문장들이 블로그에, 브런치에, 그리고 인스타에 조금씩 펼쳐졌다. 누군가의 반응을 바라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 안의 꽉 찬 마음이 터져 나갈 자리를 스스로 찾아간 것 같았다. 글을 쓰는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니었다. 하루를 온전히 버텨낸 사람으로서, 그저 '나'일 수 있었다. 말로는 설명되지 않아 엉켜있던 마음들이 문장으로 옮겨지면서 조금씩 제 모양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양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내가 나를 이해하고 다독이는 새로운 방식이 되었다.
엄마로 살다 보면 "나는 괜찮아"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게 된다. 강해지기 위한 주문 같지만, 사실은 감추고 싶은 마음을 황급히 덮는 홑이불 같은 말일 때가 많다. 하지만 글을 쓰면 그 덮어두었던 마음들이 기어이 고개를 든다. 글 위에서는 솔직해져도 되니까. 그러면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생긴다. 감추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 나의 약함을 인정하는 그 순간이 내게는 회복이었다. 이제는 안다. 글을 쓰는 건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걸. 엄마라는 역할 뒤에 숨어 희미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몇 줄이라도 남긴다.
오늘의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일의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쓰는 마음, 그것이 나를 잃지 않고 매일 다시 태어나게 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