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앞을 보고, 엄마는 뒤를 본다

아직도 어제에 머물고 있는 엄마의 시계

by 은하


요즘 들어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는 앞을 보고 걷는데, 엄마는 자꾸 뒤를 돌아본다고.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내 시간은 아직도 어제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고.




아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낮아지고, 딸아이의 얼굴엔 아이와 소녀의 경계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싶다가도, 시간은 늘 예고도 없이 성큼 흘러가 버린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5학년인 둘째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잠든 아이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고, 보드라운 살을 끌어안고 있으면 하루의 뾰족했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아이가 더 크면 언젠가는 끝날 시간이라는 걸 알기에, 그 생각이 스치면 괜히 아이를 더 꽉 안아주게 된다. 이 온기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엄마를 조금 더 애틋하게 만든다.




한창 치열하게 회사를 다닐 때는 머리카락 사이에 흰 것이 보이면 족족 뽑아내기 바빴다. 눈에 보이는 흰머리는 지워야 할 흔적이자, 관리 소홀의 증거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염색을 한다. 억지로 없애기보다, 그저 자연스럽게 덮는다는 마음으로. 아마 이제는 무언가를 지우고 부정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품는 쪽에 더 가까운 시기를 살고 있는 것 같다. 늙어감이 아니라 익어감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아이들이 자라며 나를 덜 찾는 시간이 많아졌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또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안도감과 서운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묘한 경험이다. "엄마, 이제 나 혼자 할게." 그 말이 얼마나 대견한지 알면서도,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저릿하다. 손을 놓아야 아이가 걷는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이의 옷자락 끝을 맴돈다.







나는 여전히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다. 매일 서는 주방, 익숙한 책상, 아이를 기다리던 골목길. 하지만 그 안의 공기는 분명 달라졌다. 아이들의 하루는 밖으로 향하며 점점 커지고, 나의 하루는 안으로 향하며 조금씩 작아진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그 작아진 하루가 예전보다 더 깊어지고 있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릴 땐 몰랐던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무심히 스쳐 지나갔던 감정들이 마음에 앙금처럼 남는다.




가끔 거울을 본다. 빛이 닿는 머리카락 사이로 희미하게 번지는 은빛이 보인다. 예전의 나와는 분명 다른 얼굴이다. 그런데 그 낯선 얼굴이 싫지만은 않다. 멈춰 있는 게 아니라, 나 역시 조용히 달라지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아이는 자라서 세상을 배우고, 엄마는 자라나는 그 아이를 통해 비로소 '나'를 배운다. 우리는 같은 집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간의 속도로 그렇게 함께 자라고 있다. 아직도 어제에 머물고 있는 듯한 엄마의 시계는, 멈춘 것이 아니라 아이를 기다리며 아주 천천히, 그리고 깊게 움직이고 있다.








뒤를 돌아보는 나의 시계, 그것은 앞을 향해 걷는 너의 등 뒤를 지키는 나만의 사랑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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