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여전히 쓰는 사람이다

기록이 삶이 될 때

by 은하


원래부터 쓰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끄적이는 일은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머릿속에서 엉켜있던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도 종이 위에 옮겨지고 나면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의 글쓰기는 아주 사소한 기록에 불과했다. 메모였고, 단순한 정리였으며, 그날그날을 허무하게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찍어두는 옅은 발자국에 가까웠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며 쓰는 방식은 잠시 달라졌다. 절대적인 시간이 없었고, 마음의 여유는 더더욱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손에서 펜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긴 글 대신 짧은 문장으로, 정돈된 서사 대신 토막 난 기록으로 계속해서 나를 남겨두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위태롭고 작은 조각들이 훗날 다시 단단하게 이어질 거라는 걸.







글은 어느 순간 종이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다. 브런치가 되었고, 블로그가 되었고, 때로는 카페와 SNS의 게시글이 되었다. 담아내는 그릇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았다. 흔들리는 지금의 나를 놓치지 않고 붙잡아두기 위한 몸부림. 쓰는 사람이 된 이후, 삶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결이 달라졌다.




감정이 울컥 치솟는 순간 바로 반응하고 쏟아내기보다, 한 번 더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냥 흘려보내면 사라질 하루를 문장으로 붙잡아두면서 일상의 밀도가 높아졌다. 글을 쓰면 생각의 속도가 한 템포 늦춰진다. 늦어진 생각은 말과 선택을 더 조심스럽게 만들고, 그 잠시 멈추는 과정이 나를, 그리고 내 일상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음을 요즘에서야 실감한다.




물론 글 속에 엄마로서의 나도 고스란히 남았다. 완벽하지 않아 좌절했던 하루, 아이에게 미안해서 숨죽였던 순간, 그래도 오늘은 참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날들까지. 글을 쓴다고 해서 갑자기 완벽한 엄마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글은 나를 덜 후회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복기를 통해 반성하고, 기록을 통해 내일을 다짐하게 했으니까. 이제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도, 현실에서의 도피처도 아니다. 삶을 통과하는 나만의 방식이 되었다. 엄마로서의 나와 그 이후의 나를 구분하지 않고, 그 모든 시간을 껴안아 기록하는 일.




그래서 오늘도 쓴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쓰는 일은 나를 숨 쉬게 하는 호흡이자, 매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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