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공학의 경계에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본 글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디자인을 정의하고 묘사하려 한다. 먼저, 디자인을 수사학의 지형 위에 위치시켜 묘사한다. 다음으로 디자인을 문제 해결의 한 방식으로 묘사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서로 다른 모습을 띄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그림이 결국은 하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디자인의 어원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지시하다·표현하다·성취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의 데시그나레(designare). 둘째, de+sign으로 기존의 기호들을 부정하여 새로운 기호를 만드는 것. 셋째 라틴어 pro-(forward) + 라틴어 jacere(to throw)의 구성으로 project와 의미를 같이 하여 미래의 것을 보여주는 것. 이렇게 상이한 어원을 지니고 있기에 현재 디자인을 하나의 정의로 확정 짓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을 종합하려는 노력을 통해 디자인을 하는 사람, 즉 디자이너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이는 <디자인론>의 다음 내용에서 잘 드러난다.
디자인 학문에서 그 중심에 앉혀놓을 수 있는 한 가지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이 개념과 여기에 관련된 주제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디자인의 이론과 실제에 관한 논의를 활성화해 왔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이란,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를 명백한 목표로 삼고 있으면서 고전 수사학의 개념을 이제 막 도입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잇는 그래픽 디자인뿐만 아니라, 산업디자인과 제품 디자인에서부터 건축,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의 폭넓은 디자인 영역 전반과, 또 총체적인 수사학 이론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분야까지도 모두 언급하는 것이다.
... 이런 의미에서 수사학은 사회를 형성하고 개인과 단체의 이정표를 바꾸고 새로운 행동의 패턴을 설정해 주는 예술이다. 그런데 20세기적 테크놀로지의 승승장구와 더불어 실현된 인공물들의 놀라운 위력에 의해 매우 흡사한 어떤 현상이 일어났다. 잠재 수요자들인 청중에게 새로운 제품을 선사함으로써 쟁기나 신품교배종 옥수수씨 같은 간단한 것에서부터 전자 감응 식 전구나 컴퓨터 같은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들은 개인과 사회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고 태도와 가치관을 바꾸었고 사회 그 자체의 모습을 놀라울 만큼 근본적으로 결정해 버렸다. <Richard Buchanan, Declaration by Design: Rhetoric, Argument, and Demonstration in Design Practice 中>
<디자인론> p.81, 옮긴이 강조
디자인의 어원적 정의와 인용한 글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디자인이란 결국 기호를 다루는 작업이고, 그 기호는 상호 소통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혹은 해석하기 위해 임의로 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통의 학문인 수사학이 디자인 학문의 지형이 돼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즉,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학의 하나로 취급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 하기엔 석연찮은 측면이 있다. 포용 범위를 너무 넓게 잡은 것은 아닌가? 혹은,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디자인의 또 다른 측면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의 우려는 UX 혹은 Computational design이라고 불리는 방법론 등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그리 길지 않은 디자인사 내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UX의 경우, 초기엔 당연시되었다가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고, C.D.는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화두가 되고 있다. 그리고 두 영역 모두 '문제 해결을 위한 마인드셋'을 필요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서 강조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마인드셋'은 디자인 프로세스라는 형식으로 디자이너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데 대표적인 유형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디자인 프로세스의 개요는 이런 식이다.
[1] 기호들을 수집하고, 그들을 종합한 다음 분석하여 수렴시킨다.
[2] 그런 다음 다시 그것을 다시 발산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3] 다시 분석과 종합의 과정을 통해 수렴시켜 결과물들(프로토타입)을 만든다.
[4] 이 과정을 반복하여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때까지 진행한다.
이는 근대를 열었던 데카르트의 사고방식과 매우 유사한 지점이 있다.
그는 그의 저서 방법서설에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 법칙은, 명징한 것으로 인지(認知)하지 않고는 어떠한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환언하면, 속단과 경솔함을 주의 깊게 피하는 것이며, 판단에 있어서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석판명(明晳判明)한 것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더 보태서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규칙은, 검토하려는 문제의 하나하나를 가능한 한 많은 부분으로 나누어 검토하는 것인데, 보다 쉬운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세 번째 규칙은, 사고(思考)를 질서 있게 이끌어 가는 것이며, 가장 알기 쉽고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더 복잡한 지식으로 진행하는 것이고, 자료가 반드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마치 순서가 있는 것처럼 다루는 것이다.
마지막 규칙은, 어떤 것도 누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항상 완전한 열거(列擧)와 전반적인 재검토(再檢討)를 하는 것이다.
<방법서설> R. 데카르트
즉, 디자인이 취하는 문제 해결의 방식은 현대에 널리 알려진 여러 분야가 취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공통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다른 문제 해결을 위한 분야, 예컨대 공학과 어떠한 차이를 가지는가?(혹은 가져야 하는가) 사실 이렇게 정의된 디자인은 공학과 동의어로 보인다. 재밌는 점은, 필자의 생각에 사실 공학과 디자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음 표를 보자.
애매함이라 표기한 부분은 대다수의 디자이너(공학자)들이 해당 영역에서 미흡하다고 판단되어 기술하였다. 물론 사회에서 공학을 전공한 사람과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역량이 다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디자인을 학문으로 취급할 때에는 그러한 사회적 기대를 잠깐 미뤄두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진행해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디자인은 다시 수사학의 영토로 돌아온다. 겸연쩍었던 부분을 검토한 결과, 단순히 소통만을 위한 것은 디자인이라 할 수 없고, 문제 해결의 목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걸 확인하였다. 그리고 또한, '디자인'이라는 이야기만 놓고 보았을 때에는 공학과 차이가 그다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공학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그것은 디자인에는 허용되고 공학에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예술과의 교접"이다.
주지하듯 디자인은 자주 예술과 비견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둘을 같은 선상에 놓지는 않는다. "좋은 디자인은 예술에 가깝다"라는 그럴듯하지만 "모든 디자인은 예술이다"라는 말은 헛소리처럼 들린다. 그런데 '공학이 예술적이다'라는 말은 어딘지 어색하다. 사실 이는 디자인과 공학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ㅡ지금껏 숨기고 있었던 아주 중요한 차이ㅡ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공학은 둘 다 기호를 다루지만 두 기호의 성격은 완연히 다르다. 전자는 조형 기호를 다루고, 후자는 자연어 기호를 다룬다. 그리고 예술은 마찬가지로 조형 기호를 다루는 분야 중 하나이다.(보다 정확히는 미술과 조각) 이렇듯 근본적인 친화성에서 디자인과 공학이 맞닿아 있고, 디자인과 예술이 맞닿아 있지만 공학과 예술은 먼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이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디자인은 조형 기호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함과 동시에 문제 해결을 목표해야 한다.
디자인을 하는 우리는 때로는 예술가처럼, 때로는 공학자처럼 현상에 접근하여 문제를 발굴해 내고, 해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태도의 문제이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우리가 획득해야 할 최초의 질문은 "디자이너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