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여름의 끝자락, 저녁 6시 15분.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다.
아직 완전히 어둡지 않은 하늘이 서서히 색을 바꾸고 있다.
낮의 열기는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버스는 아직 멀었다는 안내판의 숫자.
그 짧은 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게 뭐지?
내가 지금 죽으면 후회하지 않을까?
그 질문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일상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가볍지 않았다.
그 후 몇 주의 시간을 두고 일을 정리했다.
그즈음 외할머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거의 100세를 바라보는 분이시니
어쩌면 순리인지 모른다.
엄마는 매일 외할머니를 간호하러 가셨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엄마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할머니의 시계가 멈춰가는 걸 보면서,
백 년이라는 장대한 여정도 결국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을,
내게 주어진 시간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마음을 먹고,
나는 나에게 두 달이라는 방학 같은 시간을 주기로 했다.
두 달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고 생각했다.
일단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전 9시, 출근하는 느낌으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고,
글을 쓰고, 도서관에 가고, 산책을 했다.
아무도 정해주지 않은 시간표였지만,
나는 그 루틴을 지켰다.
p 244
공상에 빠져 있지 않을 때면 베유는 글을 쓰고 또 썼다. 겨우 4개월 동안 800쪽에 달하는 원고를 쏟아냈고 거기에 더해 편지도 수없이 많이 썼다. 하루에 세 시간 넘게 자는 날이 드물었고, 동이 틀 때까지 일하는 때도 많았다. 이런 작업 속도는 이미 허약했던 건강을 더 악화시켰다. 베유는 전보다 덜 먹었고 기침을 더 많이 했다. 두통은 갈수록 더 심해졌다. 베유는 자신이 곧 미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1943년 4월 15일, 베유는 일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걱정이 된 친구가 포틀랜드가 31번지로 서둘러 달려갔다. 베유는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베유는 즉시 미들섹스 병원으로 실려갔고, 의사는 결핵 진단을 내렸다.
스푼 하나도 들기 힘들 만큼 극도로 허약한 상태였지만 베유는 어떻게든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의사들은 베유가 좀 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유는 의사의 말을 무시했다. “베유의 마지막 편지들에서도 드러나는 확실한 글쓰기는 정말 놀라울 정도이며 여기에는 극도의 의지력이 필요했으리라 예상된다.”²⁰ 페트르만은 말한다.
책 속에서 시몬 베유를 만났다.
34살에 죽은 철학자.
1943년 결핵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거부했다.
점령된 프랑스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자신만 영양을 공급받을 수 없다며,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로 런던의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마지막 순간에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전후 프랑스의 재건에 관한 보고서를 썼다.
병든 몸으로,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에서,
사유를 멈출 수 없다고 말하며 끝까지 글을 썼다.
베유에게 고통은 피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나는 감히 베유와 내 상황을 비교할 수 없다.
그녀의 고통과 헌신 앞에서
내 두 달의 방학은 너무나 사소하고 평범했기때문이다.
오전 9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는다.
빈 페이지를 마주한다. (아.. 오늘뭐쓰지...?)
베유처럼 거창한 재건 보고서를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기울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오전 9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빈 페이지 위의 첫 문장을,(아...)
끝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