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공동기여 풀 1%
— 자동 지구돌봄기금, 그리고 로비 구조의 역전
[공동기여 계정 구조]
기본소득 총액
↓
10% 공동기여 계정
├─ 9% 시민 지정 공동기여 슬롯
└─ 1% 자동 지구돌봄기금
공동기여 슬롯 9%가
시민 각자의 선택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였다면,
나머지 1%는
선택의 영역 바깥에 남겨 두었습니다.
그 1%는
개인이 지정하지 않았고,
국가도 임의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자동으로 적립되었고,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가졌습니다.
지구를 돌보는 일.
한국형 기본소득은
이 1%를
‘지구돌봄기금’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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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환경은
개인의 선호로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기후 변화는
찬반 투표로 멈추지 않았고,
환경 파괴는
의식 있는 소비만으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공기를 마시고,
물을 사용하고,
땅 위에서 살아가는 한
누구도 완전히 빠져나갈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형 기본소득은
환경만큼은
선택의 영역에 남겨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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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적립이라는 방식은
윤리적 질문을 불러왔습니다.
“왜 내 선택권이 없는가.” “왜 이 몫은 반드시 환경으로 가야 하는가.”
한국형 기본소득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 1%는
개인의 선의를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지켜낼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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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환경 정책은
언제나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었습니다.
환경은
성과를 빠르게 증명하기 어려웠고,
단기적 이익을 제공하지 않았으며,
정치적으로도 표가 되기 힘든 영역이었습니다.
그 결과
환경은 늘 후순위로 밀렸고,
결국 기업 로비와 산업 논리 앞에서
조정 가능한 항목으로 취급되었습니다.
한국형 기본소득은
이 구조를 정면으로 뒤집었습니다.
환경을 위한 재원은
더 이상 설득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매달, 자동으로,
모든 사람의 몫에서
같은 비율로 적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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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는
로비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이전에는
환경을 파괴하는 쪽이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었고,
환경을 지키는 쪽은
항상 모금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동기여 풀 1%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환경은
항상 자금을 보유한 영역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누가 환경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는가,
어떤 기술이 더 지속 가능한가가
경쟁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기업과 정책 집단은
환경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로비하는 대신,
환경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자신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로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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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적립의 윤리는
강요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환경을 사랑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환경을 돌보는 비용은
이미 함께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분명히 했을 뿐입니다.
이 윤리는
도덕적 우월을 주장하지 않았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지도 않았습니다.
환경을
‘착한 사람의 선택’에서
‘공동체의 기본 조건’으로 옮겨 놓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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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여 풀 1%는
작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1%는
한국형 기본소득이
어디까지를 개인의 자유로 두고,
어디부터를 공동의 책임으로 설정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장치였습니다.
9%는
시민이 선택했고,
1%는
사회가 미리 결정했습니다.
이 균형은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을 공백으로 남기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설계는
한국형 기본소득이
단순한 분배 정책이 아니라,
어떤 세계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선언이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환경은
누군가의 의제가 아니라,
모두의 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