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 [시즌1] 프롤로그

이미 시작된 이야기

by 밀리폭

어쩌면 세상은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이
이 사회가 어딘가 기울고 있다는 감각을 지우지 못하게 한다.


세금은 복잡해졌고,
안전하다는 확신은 희미하고,
집은 멀어졌고,
개인정보는 불편해졌고,

멈추는 순간 뒤쳐지는 사회가 되었고,

기후위기는 뉴스가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문제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가 만난 한 사람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것들은
이미 하나의 이야기라고.


그리고 그 이야기는

먼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허미래가

그날도, 어김없이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와 마주 앉아 있으면 가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현재인지,

아니면 이미 지나간 미래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대화가 시작된 건

오늘이 아니었다.



그해 1월,

워싱턴에서 열린 SSWR 연례 학회는

언제나처럼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수백 개의 세션,

겹쳐 돌아가는 발표 일정,

복도에는

다음 발표를 향해 이동하는 연구자들로

늘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한국 농촌기본소득에 관한 발표를 마치고

익숙한 마지막 슬라이드를 띄웠다.


> Questions or comments are welcome.

Please feel free to contact me.


몇 개의 질문이 이어졌고,

발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면 연락 달라는 말로

조용히 끝났다.


사람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그날 밤,

호텔 방으로 돌아온 뒤

이메일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질문은 길지 않았다.

정중했고,

이상할 정도로 핵심만 짚고 있었다.


마치

내 발표를

이미 여러 번 들어본 사람처럼.


나는 답장을 보냈고,

다음 날 아침

학회장 1층 카페에서 만나자는

짧은 약속이 잡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이 대화가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은.



허미래는

처음 만났을 때도

자신을 특별하게 소개하지 않았다.


그녀는 청중이었고,

질문을 남긴 사람이었으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몇 번 더 만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아 있다.


나는 기록자였고,

이한결은

질문을 그냥 넘기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허미래는

질문을 던졌지만

동의를 요구하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허미래가 질문자라는 말은

무언가를 캐묻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녀는

긴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어온 것들,

당연하다고 넘겨왔던 판단의 순서를

조용히 되돌려놓았다.


그녀의 말은

대답처럼 들렸지만,

언제나 질문으로 끝났다.


무엇이 옳은지를 말하기보다,

우리가 왜

그것을 옳다고 믿게 되었는지를

되묻게 했다.



그날,

허미래가 말을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요즘 세금 이야기만 나와도

사람들이 서로를 너무 빨리 판단하는 것 같아요.”


이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냈고,

누가 안 냈고,

그걸로 바로 편이 갈리죠.”


나는 말을 이었다.


“사실은

다들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 과세되고 있는데도요.”


그 순간,

허미래가

아주 잠깐

나를 바라보았다.


놀란 표정도,

동의의 고개도 아니었다.


마치

이미 알고 있던 문장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다시 들은 사람처럼.


그녀는 그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 분,

기본소득이

이미 깔려 있는 사회를

직접 본 적은 없겠죠?”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조각들은 본 적 있죠.

농촌기본소득도 있고,

기회소득, 소비쿠폰도 있고요.

이제는 선거철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 됐잖아요.”


“완전한 기본소득 사회는…

상상은 해봤지만요.”


이한결도 덧붙였다.


“재원이 없다,

포퓰리즘이다.

아직은

그 말이 더 크죠.”


허미래는

잠시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겁니다.”


그녀는 차분하게,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기본소득이

당연한 전제로 깔린 사회를

살아본 적이 있으니까요.”


우리는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말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허미래는

자신을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사회를

나는 이미 살아봤습니다.”


그 사회에서는

모두가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받았고,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재 자체가

의심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을

유토피아라고 부르지 않았다.


“기본소득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어요.”


잠시 말을 멈춘 뒤

그녀는 덧붙였다.


“다만

문제들이

더 이상 숨겨지지 않았을 뿐이죠.”



“제가 본 혁명은

지금까지 역사와 달리

아주 조용했습니다.”


그녀가 말한 붕괴는

폭발처럼 오지 않았다.


세금은 정교해졌지만

사람들은 점점

공정하지 않다고 느꼈고,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했지만

세상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쪽의 언어로

움직이고 있었다.


법은 존재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순간이

늘어났으며,


도시는 성장했지만

그 안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하나둘 밀려났다.


개인의 자유는 존중된다고 말해졌지만,

아무도 익명으로 남을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는 불안한 채,
멈추는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를 의심하도록 설계된 사회였다.


환경 파괴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취급되었고,

그 결과는 결국

우리의 식탁으로 돌아왔다.



“당신들은

이 모든 걸

따로따로 생각합니다.”


허미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각각 다른 문제라고 여기죠.”


그녀는

설득하지 않았다.

경고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래를 예언하러 온 게 아닙니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조금 먼저

겪었을 뿐이에요.”


그녀가 증언하려는 것은

어떤 완성된 제도를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붕괴의 순서였다.


여전히 사회적 계급이 극명한 세상에서

권력은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그 왜곡이

규범을 어떻게 무력화했고,

무력해진 규범이

삶을 어디까지 밀어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인과 지구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었는지.



“기본소득은

그 모든 이야기의 끝에 등장합니다.”


허미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건

그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대화는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기록이라는 것을.


무언가를 도입하자는 요구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지나온 길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으려는 시도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

여섯 개의 붕괴로 나뉜다.


윤리의 붕괴

권력의 붕괴

질서의 붕괴

삶의 붕괴

개인의 붕괴

자유의 붕괴

지구의 붕괴


이것은

미래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미래는

분명히 말했다.


“당신들은

이미

그 안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