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루저로 분류되는가
세금은 점점 복잡해졌고,
그 복잡함은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았다.
면세와 감세, 증세.
그 말들은 더 이상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금을 나누고,
사람을 나누고,
표를 모으는 정치의 기술이 되었다.
이 사회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금을 내는
네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허미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사회에는
소득세를 기준으로 보면
세금이 ‘0’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미리는 고개를 들었고,
이한결의 표정은 이미 굳어 있었다.
“네 부류 중
세 부류는
소득세만 놓고 보면
결과가 0입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그 셋은
모두 다른 이유로 0이고,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습니다.”
“요즘은
급여를 받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허미래의 말에는
감정이 없었다.
사실만 있었다.
“부의 신기원을 차지한 사람들.
백만장자에서 조만장자에 이르기까지,
급여와 소득세의 질서로부터
한 발 비켜설 수 있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급여를 받지 않습니다.
대신 주식을 보유합니다.”
“주식은
팔기 전까지 소득이 아닙니다.”
“그 주식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립니다.”
“대출은 소득이 아니고,
이자는 비용입니다.”
“비용은
과세 대상이 아닙니다.”
그녀는 문장을 하나씩 끊어 말했다.
“그래서
소득세는 0입니다.”
이한결이 물었다.
“… 불법은 아니잖아요?”
“아닙니다.”
허미래는 즉답했다.
“완전히 합법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
‘고용을 창출하는 사람’,
‘기여자’로 불립니다.”
법인을 설계하고,
회사경비처리해 생활하고,
합법적인 절세 구조와 로비를 통해
소득세가 0이 된 초부자들.
그들은
급여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지만,
기여의 언어에서는
가장 먼저 호명된다.
허미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
“미국에서는
급여를 받지 않고
지분으로 사는 사람들이
공공연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는
그 구조가
조용할 뿐이죠.
하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누군가는
반년도 되지 않아
재산이 126조가 늘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덧붙였다.
“그건 능력의 보상이 아니라,
위치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들은
존경받을 만한 과세자로
분류된다.
“두 번째 부류는
급여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의사, 변호사,
대기업의 고위 직급자,
전문직과 고소득 월급 노동자들.”
“급여는 투명하고,
원천징수는 자동이며,
꼼수는 거의 없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전체 소득세 상당 부분을
실제로 부담합니다.”
“환급을 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더 내야 하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허미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 부류 역시
존경받는 과세자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일합니다.”
“월급을 받거나 사업소득을 얻고,
세금을 원천징수·예납으로 부담합니다.”
“소득이 낮아
세금 정산 과정에서
공제와 장려금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결과는
0에 가깝게 수렴됩니다.”
허미래는
테이블 위에
손가락으로 숫자를 썼다.
0
“같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앞선 부류에서는 ‘능력’이 되고,
이 부류에서는 ‘루저’가 됩니다.”
이들은
열심히 일하고,
합법적으로 환급을 받으며,
소비를 통해
경제를 순환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설명을 요구받는다.
왜 받았는지,
왜 부족한지,
왜 세금을 안 냈다고 보이는지.
“소득세 납세자의 다수,
약 70%가
이 ‘설명해야 하는 구간’에 속해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존경받을 만한 과세자임에도
항상 낙인의 경계에 서 있다.
“네 번째 부류는
소득세가 없습니다.”
“하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부가가치세,
전기요금,
통신요금,
교통비,
음식값.”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과세 상태입니다.”
허미래는 낮게 말했다.
“소득세만을
세금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 사회는
사람들에게
‘기여 증명’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현미리가 중얼거렸다.
“… 복지충, 세금도둑, 무임승차자.”
허미래는
그 단어들을 고치지 않았다.
그 말은
고쳐서 해결될 수 있는
종류의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비 비중이 높고,
환경 부담은 가장 적으며,
삶 전체로 보면
가장 직접적으로 세금을 낸다.
그럼에도
‘세금을 낸 적 없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이 네 부류는
모두 세금을 낸다.
다만
어떤 세금은 보이지 않게 설계되었고,
어떤 세금은 낙인이 되었다.
세금이 복잡해지는 순간,
이 사회는
세금으로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기 시작했다.
허미래는 조용히 말을 맺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묻습니다.”
“누가 루저이고,
누가 성공한 사람인가.”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세상을 더 살기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방 안은 고요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현미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방법은 있었나요?”
허미래는
오래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답은
이미 단순합니다.”
“누가 더 냈는지를
계속 따지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나 이미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시작하는 사회.”
“그리고
그 기여를
조건 없이 되돌려주는
하나의 장치.”
그녀는 그 이름을
조용히 말했다.
“기본소득입니다.”
이한결이 물었다.
“그러니까
일하지 않아도
주는 돈이라는 건가요?”
허미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미 모두가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돌려주는 겁니다.”
“노동으로,
자본으로,
소비로,
돌봄으로.”
“방식은 달라도
기여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그 사실을
처음으로
제도 안에 기록하는 장치입니다.”
그녀는 분명히 말했다.
“보편적으로 기여하고,
보편적으로 배당받는 구조.”
“누군가는 설명해야 하고,
누군가는 증명해야 하며,
누군가는 낙인 속에 머무는 이 사회를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입니다.”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이야기는
더 이상
‘누가 루저인가’를 묻지 않았다.
대신
이 질문으로
조용히 방향을 틀고 있었다.
이 사회는
모두의 기여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허미래는
시선을 거두며
조용히 말을 맺었다.
“문제는
돈이 아닙니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빠져나가며,
누가 설명해야 하는가.”
“그 질서부터
우리는 다시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