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산다는 것

오후 4시. 문득 낮잠에서 깨어나

by 임미리

2020년 10월 28일 오후 4시.


수업을 마치고 수업에 쓰인 긴장을 해소하느라 늘 하듯이 웹툰을 읽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번뜩 깼다. 매일 잠이 들지만 꿈속에 나는 아직도 한국에 종종 살고 있다. 매일드는 잠인데 오늘은 이런생각이 들며 이모가 보내온 카카오톡 지방세 체납증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것이다.

'아. 나 지금 한국이 아니라 싱가포르에 살고 있지.'


20201028_163338.png 늘 섬세하고 다정한 이모의 문자

서울생활 11년. 생각보다 길었던 내 인생의 2막을 정리하였음을 이모가 최근 종종 보내오는 고지서들이 말해주고, 아직 정리 하지 못한 인터넷 약정기간 따위가 나의 서울에 미련스럽게 남아있다. 그리고 아직도 나의 인생은 시작점이었던 1막으로 돌아가야 함을...


나의 서울... 길에 버려진 작은 고양이 같던 꿈이 자라고 실패하고 그럼에도 따스한 내 자리를 한 구석에 마련 해 준 곳. 내 자아가 집을 찾은 곳. 고마운 곳. 어떤 이유로 이 곳 싱가포르에 와 있으나 문득 심장 한 쪽을 움켜진 듯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이모의 문자에서 '이쪽'이라 함은 내가 자란, 내 어머니가 계신 경상도의 칠곡군 왜관읍을 말하는데 이 곳은 내 모든 아픔이 원한처럼 서려있는 곳이라 기차표에서 이름만 봐도 그 이름에 냉기가 도는 곳이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다면 나는 이 곳에 다시 가고나 싶을까 하는 곳이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왕자를 길들이며 하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수 많은 여우들이 의미가 없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게 된다면 나는 네게 세상에 하나 뿐인 여우가 되는 거라고.

이 처럼 아무도 모를 왜관읍 같은 곳이지만 나에게는 어두운 회색 (최근 시커먼 검정에서 겨우 바뀌었다) 인 것은 내가 그 곳을 그리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서울은 이 어두운 회색을 포함한 무지개 색이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건데 나에게 싱가포르는 무슨 색인가.

황금빛이다. 지금 사진에 빛나고 있는 야경처럼.

내 인생의 어둡고 축축했던 시절을 지나, 나는 지금 황금색의 도시에 살고 있다.

'아 지금 싱가포르에 살고 있지' 라고 계속 되뇌이고 싶은 곳이다.

나는 지금 서울, 왜관에 살고 있지 않다고. 그 곳에 없다고. 꿈속의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싱가포르에 산다는 것은 눈물나도록 눈부신 삶이다. 이곳에서 겪은 아픔들은 나에게는 모기한방 (독감바이러스 제외) 물린 것과 같이 시시한 것이며 버물리 한 방이면 삽시간에 다 해결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슴한구석 아린 감정은 결국 한국을 돌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고 대결해야만 하는 응어리이다.


KakaoTalk_20201012_181101500.jpg 눈물이 번지듯 아름다운 싱가포르의 야경

브런치를 시작했다. 감사하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