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10살 어린 엄마

엄마의 엄마 첫날은 어땠을까

by 이꺽정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많이 사라지고, 또 어렴풋하지만 몇 안되게 생생한 기억 중 하나가 바로 동생이 태어나던 날이다. 엄마가 병원에 가야 해서 나는 아마도 근처에 사시던 할아버지댁에 맡겨졌는데, 그날 밤 엉엉 울며 아빠에게 안겨서 엄마를 보러 병원으로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그때의 나는 엄마가 어딘가에 가버렸다는 불안감에 집이 떠나가라 울면서 엄마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겠지, 할머니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던 모습까지 선연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그 기억에 뒤이어 온돌방이었던 병실 앞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마친 엄마가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빠가 엄마가 오려면 더 많이 있어야 하니 들어가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아기를 낳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려웠을 꼬마에게도 어떤 심상찮음이 느껴진 게 분명했다. 정작 동생을 봤던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는다.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서, 제왕절개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누워있는 건 내가 되었다. 수술날 아침, 면회를 할 수 없는 병원이라 엄마가 아침 일찍이라도 병원 앞으로 얼굴을 보러 오고 싶다고 했지만, 거기서 여기까지 멀리 어떻게 오냐며 나도 모르게 또 퉁명스럽게 말하고 말았다.


출산이 성큼성큼 다가오면서 엄마의 목소리에는 설렘보다는 걱정이 담뿍 배어있었는데,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괜히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져서, 나를 다그치는 것처럼 엄마에게 꽤나 모질게 말했다. 사실은 엄마 얼굴을 보면 괜히 왈칵 겁이 날 것 같아서, 엄마도 이렇게 무서웠냐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안 그래도 걱정 많은 엄마를 더 걱정하게 만들 것 같아서 보고 싶은 맘을 참은 건데, 마음과 말이 달리 나가서 엄마에게 미안했고, 이런 서툰 방식으로 마음을 숨기는 스스로가 조금은 미워졌다.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엄마의 마음을 몰라준다. 아니, 애써 외면한다.

아기가 무사히 잘 태어났고, 나도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을 거쳐 병실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엄마는 그제야 한 시름을 놓았겠지. 엄마와 통화를 할 때는 또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무사함을 알렸지만, 그냥 아침에 엄마가 좀 힘들어도 오라고 할 걸, 잔잔하게 후회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살면서 한 번도 “수술”이라고 불리는 일을 겪은 적이 없었는데 난생처음 느끼는 생경한 고통과 불편함에 그날밤은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엄마가 되면 고통을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건가 싶었는데, 나를 닮은 작은 생명이 세상에 숨을 틔웠다는 감동과 새 생명에 대한 숭고함으로 고통을 참아내기엔 고통은 너무 생생한 감각이었다. 그래도 남편이 찍어준 아기 사진을 보면서 내일은 걸어서 꼭 보러 가야지, 다짐을 하며 발가락을 열심히 꼼지락거리고, 발목도 요리조리 휙휙 움직였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는 밤, 천장을 보고 누워서, 창문 밖으로는 씽씽 빠르게 스쳐가는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지금의 나보다 10살은 더 어렸던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도 이렇게 나만큼 아팠을까, 너무 아파서 찔끔 눈물이 났을까, 그때의 아빠가 물도 떠다 주고, 다리도 주물러주고, 부축은 잘해줬을까, 그때의 엄마가 괜히 걱정이었다.

임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걱정되는 마음에 엄마에게 출산할 때 많이 아팠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는 젊어서 괜찮았다며 장난스레 말했지만, 엄마가 나만큼 아팠다고 생각하면 괜히 코끝이 더 찡하다. 이 고통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딱 그만큼 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고통을 알고 있기에 내가 더 걱정되었을 엄마에게 퉁명스럽게 말한 나를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다.

엄마의 엄마 첫날은 어땠을까,

이미 한참 오래전 일이 되었지만, 엄마에게 그날이 마냥 아프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나보단 덜 아프고, 나만큼 행복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 밤에 혼자서 마음속으로 어린 엄마를 걱정하고, 또 다독이고, 이제는 할머니가 된 나의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그리고 또 고맙다고 했다.

화, 목, 토 연재
이전 01화0년 차 엄마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