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때, 한창 코로나가 기승이라서 가족들과의 만남조차 조심스러웠다. 애써 약속을 잡아도 만나기로 했던 사람 중 누군가가 확진되어서, 혹은 자가격리를 해야 해서 취소되는 일도 굉장히 잦았다.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외할머니께 만큼은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아끼시는 첫째 손녀딸이 결혼하게 될 사람을,
다행히 할머니가 정기검진을 받으셔야 해서 서울에 올라오실 일이 있었고, 서울에 오시면 우리 집에 계셨다 가시기 때문에 맞춰서 우리 집으로 가면 딱! 되는 고마운 일정이었다. 검사 예약도 마침 월요일이라, 일요일에 미리 올라오신 할머니를 뵈러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그 먼 시골에서 올라오시면서도 가방 가득 우리가 좋아하는 김밥을 만들어오셨다. 고령의 연세에 이이 많은 김밥을 어떻게 가방에 넣어오신 걸까, 싶게 잔뜩이고 지고 오신 것 같아 늘 한결같은 그 사랑에 괜히 코 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맹김에 각종 잡곡과 찹쌀을 넣어지은 찰밥을 돌돌 말아서 만드는 짭짤하고 맛있는 김밥! 도착함과 동시에 상에는 김밥이 한가득 올라왔고,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철없는 손녀와, 우리 할머니는 무조건 많이, 잘 먹어야 예뻐라 하신다고 오는 내내 신신당부를 들은 예비 손주 사위는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쁘게 먹었다.
우리 할머니는 평소에 굉장히 무뚝뚝하신 성품이라, 말씀도 굉장히 시크하게 하시는 편이다. 처음 만난 예비 손주 사위에게도 딱딱하게 인사를 건네시고는 멀찍이 떨어져서 앉으셨는데, 김밥을 먹다가 옆을 돌아보니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계신 할머니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ㅡ 할머니, 왜 우세요!
할머니는 우리의 놀람에 당황하셔서 바쁘게 눈물을 훔치셨다. 할머니에게 나는 아직 어린 손녀딸일 텐데,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내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 할머니의 지난 시간들이 새삼스레 스쳐 지나간 걸까. 아니면, 항상 나를 최고라고 추켜세워주시며 유독 예뻐하시던 몇 년 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러신 지도 몰랐다.
ㅡ 할머니, 손주사윗감 어때? 잘 골랐어?
ㅡ 깜찍하다. 이뻐.
할머니의 표현에 우리 모두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깜찍하다는 표현을 얼마 만에 들어보는지 모르겠다. 깜찍이가 맘에 드신 할머니와 3n살의 깜찍이만 빼고는 모두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래도 할머니의 깜찍 발언 덕분에 조금은 어색했던 분위기는 사르르 녹고, 결혼식날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이후에 엄마에게 따로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가 떠나고 난 뒤에도 할머니는 “깜찍하더라”라는 표현을 몇 번이고 쓰셨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깜찍이”라고 부르신다.
깜찍한 손주 사위 덕분에 할머니의 일상에 즐거운 소재가 하나 늘어난 것 같아서 덩달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