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꺽정 Feb 02. 2023

키덜트딸이 속상한 엄마

엄마, 난 그냥 귀여운 게 좋은 거야!



나는 귀여운 걸 좋아한다. 보들보들 작고 앙증맞은 동물 인형, 쪼르륵 세워둘 수 있는 피규어. 여기저기 붙여두는 것 만으로 혼자서 흐뭇해지는 엽서나 스티커, 때로는 마트의 장난감 코너에 가서 운명적으로 나의 눈에 드는 뭔가가 없는지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집 곳곳에는 나만의 귀엽고 소중한 컬렉션이 잔뜩이다.


해피밀 장난감을 받고 싶어서 맥딜리버리로 해피밀을 잔뜩 시키는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기도 하고,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춤추는 트리를 구매하고 크리스마스 다가오는 내내 트리와 함께 흥겹게 춤을 췄다. 우리 집에 처음으로 놀러 오신 시어머니는 내가 4살 배기 조카를 놀아주느라 어딘가에서 계속 꺼내오는 귀여운 아이템들을 보고 신기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ㅡ 이 집은 아도 없는데 우째 이래 장난감이 많노?


타박이 아닌 순수한 궁금증이라는 게 느껴져서 겸연쩍게 웃으며 나의 귀여운 취향을 고백했다. 남편이 옆에서 덩달아 겸연쩍게 웃고 있는 게 웃겼다.



연애시절 내내 남편은 나의 귀여운 취향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고는 했다. 일단, 데이트하다가 문구점이나 소품샵 같은 곳이 나오면 조건반사처럼 입장해야 했고, 놀이공원에라도 갈라치면 기념품샵에서 어린이 친구들과 함께 구경 삼매경, 뭐라도 하나 품에 안고 나와야만 직성이 풀렸다. 지금 우리 집 커다란 고무나무 밑에서 여유롭게 있는 알파카 인형도 꿈과 희망의 나라에서 업어온 것이다. 남편은 아직까지도 내 취향에 공감하거나, 동조하지는 못하지만 결코 만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나의 이런 취향을 유독 슬프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도 우리 집에 왔을 때 여기저기 놓여있는 인형들을 보고 살짝 놀란 눈치였다. 집에서도 이런 게 없지 않았지만, 거기는 다채로운 가족들의 짐과 섞여있어서 약간 버무려지는 감이 있었는데, 새로운 공간에 나와 남편의 짐만 꾸려놓으니 내 아이템들이 존재감을 한껏 뽐냈다.


ㅡ 인형이 진짜 많긴 하네.


엄마의 짧은 놀람에 남편이 다시 겸연쩍은 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ㅡ 워낙 귀여운 걸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대한 엄마의 답이 너무 진지했다.

평소에도 지나치게 진지한 편인 우리 엄마는 딸의 취향까지 궁서체로 바라보고 있었다.


ㅡ 어릴 적에 장난감을 많이 못 사줘서 그래. 그래서 아직까지 저런 걸 좋아해.


속상함이 잔뜩 베어나는 엄마의 한 마디에 나는 발끈! 난 그냥 귀여운 걸 좋아하는 거야!라고 응수했다. 엄마는 나의 항변은 진지하게 듣지 않는 듯 보였다.


항상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이제는 다 큰 딸에게 미안해하는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오히려 나는 더 속상해진다.

정말인데, 엄마는 오히려 나에게 귀여운 선물을 충분히 사주었다. 캐리어처럼 열고 닫을 수 있는 인형의 집, 머리 위에 안테나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텔레토비 인형, 동글동글하고 폭신폭신한 햄스터 쿠션, 난다 긴다 하는 마법소녀들의 온갖 요술봉과 변신 브로치! 지금까지도 생생히 생각나는 장난감들만 해도 열 손가락을 채우고도 남는다.



엄마의 사랑이 충분했기 때문에, 엄마가 작고 소중한 것들의 중요성을 알려준 덕분에, 나는 귀여운 걸 아끼고 좋아하는 다정한 사람으로 자랐는데, 엄마만 몰라준다!

작가의 이전글 무서운 식재료 도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