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긴 에피소드나 들었던 생각들에 대해서 시시콜콜, 대단치 않은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편이지만, 이 세상에 쉽게 쓰인 글이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내게도 글을 쓰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글을 쓰는 게 어렵다기보다는 무엇에 대해 쓸지를 정하는 과정이 참 어렵다. 주제 혹은 글감을 찾는 게 가장 어려운 셈이다.
글감에 목마른 나는 늘 그분을 기다린다.
바람처럼 왔다, 이슬처럼 사라지는 나의 영감(님)! 작은 전기가 오르는 것처럼 찌릿! 하는 느낌을 가져다주는 생경하지만, 반가운 만남을 기다리게 된다. 물론, 나에게 찾아오는 영감님은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여느 분들의 영감님과는 다르게 꽤나 작고 귀여운 편이다. 그렇지만, 서프라이즈를 좋아하셔서 갑자기 나타나고, 또 성격이 급해 내가 심드렁하면 금세 자취를 감춰버리기 때문에 나타났을 때 단단히 붙잡아 두어야 한다.
길을 걷고 있을 때, 무언가를 먹을 때, 집을 정리하다가 잊었던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얼마 전 찍어둔 사진을 볼 때, 누군가가 내게 어떤 말을 건네었을 때,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이 예쁠 때, 바람 속에서 다른 계절의 냄새가 날 때, 유독 들떴을 때나 특히나 더 우울할 때, 어딘가에 숨어있던 영감님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는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쩌면 영감님이 어디선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내가 목이 빠져라 영감님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글을 꾸준히 써보려고 노력하는 요즘에는 더 미어캣처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다니고, 평소라면 무심하게 지나쳤을 사람이나 풍경도 더 세심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좀 더 눈을 게슴츠레 뜨고,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그런 때라면 영감님이 슬쩍, 나타나시곤 한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영감님이 나타나시면 꽁꽁 묶어서 수첩 속에 붙잡아두려고! 물론, 수첩이 없을 때면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방에 그때그때 단어를 보내두기도 하고, 아쉬운 대로 휴대폰 메모장에 끄적이기도 하고, 남편과 산책길에 핸드폰마저 없을 때는 남편에게 핸드폰을 꺼내라고 성화를 한 뒤에 그는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를 것 같은 단어들을 무작정 받아 적으라고 한 적도 있었다.
ㅡ나무 잡고 퉤퉤퉤. 적어!
ㅡ응? 그게 뭔데?
ㅡ몰라도 돼. 일단 빨리 적어놔 봐 봐
찰나의 영감, 힘들게 만난 글감을 잡아두기 위한 초보 작가의 발버둥. 이럴 때면, 창작의 고통을 실감하면서 어렵지 않게 줄줄 읽히는 쉬운 글은 있어도, 쉽게 쓰인 글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