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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미 Aug 13. 2020

나는 냉면 펄슨이 아니었다

2n년 인생을 되돌아보다 - 평양냉면 첫 시식기


평양냉면, 친해지길 바라 : 첫 만남, 낯 가림
을밀대 본점

한국어에 없어서 아쉬운 영어 표현 중에 뫄뫄 person이라는 표현이 있다. 뫄뫄 덕후라는 표현보다 그 뫄뫄를 너무 사랑해서 결국 한 몸이 되었다는 느낌을 너무나 잘 표현해서 듣자마자 감탄을 했었더랬다  교환학생 시절 미국인 친구가 쓰는 걸 처음 듣고 너무 좋아서 제법 많이 사용했던 영어 표현이다. 아무튼 나는 냉면 펄슨이(었)다. 저번 달까지 못해도 삼일에 한 번은 냉면을 먹었다. 점심 저녁으로 모두 냉면을 먹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냉면이 가장 먼저 생각나고, 배가 안 고파도 냉면이 고팠다. 그런 냉면 펄슨도 평양냉면과는 아직 초면이었다. 빠지면 사족을 못 쓴다는 그 평양냉면. 드디어 맛 보았다.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을밀대 본점에서 첫 시식을 하기로 했다. 식당 외관이 아주 요즘 갬성이었다. 레트로해서 힙한 그런 가게였다. 웨이팅이 한 팀 있었다. 그 유명한 을밀대 본점에서 웨이팅쯤은 각오했다. 그런데 한 팀 쯤이야. 10분 정도를 기다리고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는 단촐했다. 비냉도 좋아하지만 냉면의 기본은 물냉. 진지한 맛 평가를 위해 물냉을 시켰다. 을밀대가 양각으로 새겨진 젓가락과 무절임, 주전자에 담긴 온육수가 나왔다. 포장을 벗긴 젓가락은 일반 젓가락보다 길고 무거웠다. 무절임을 먹었다. 무 맛이고 무無 맛이었다. 시판 무절임을 아이용으로 물에 몇 번 헹군 맛이었다. 온육수를 한 입 마셨다. 사골 향이 나는 따뜻한 물이었다. 삼삼한 맛이 이런 것인가. 괜한 도전을 한 것 같아 조금 두려워졌다.



냉면이 나왔다.평범했다. 무절임과 오이와 고기 두 점과 계란 반 쪽이 고명으로 얹어져있었다. 국물 맛을 보고 싶었는데 숟가락을 주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이곳은 원래 젓가락만으로 먹는 게 룰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릇 째로 국물을 마셨다. 고기를 담궜다가 뺀 물 맛에서 묘하게 후추 맛이 더해진 맛이었다. 식초를 한 바퀴 둘렀다. 식초 향이 나는 고기 빤 물 맛이 났다. 상에 올라온 음식 중 맛이 나는 유일한 건 겨자였다. 평양냉면의 ‘삼삼함’은 재료를 물에 헹군 맛이었다.


평양냉면까지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냉면 펄슨이 되는 거라면, 나는 냉면 펄슨은....그만할래...



그런데 냉면 펄슨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평냉 입문 가게를 추천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평냉과 한 번 친해져보기로 했다. 다음은 필동면옥과 우래옥이다. 완벽한 냉면 펄슨으로 거듭나기 위한 여정은 계속된다. 계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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