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용서받지 못한 자'이다

by 밀덕여사

뭇 20대 한국 남성들에게 그것은 교통사고처럼 찾아온다. 바로 입대 영장이다.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올 땐 매우 갑작스럽다. 허무하게도 '사고'가 이끄는 운명에 꼼짝 없이 끌려가게 된다.

2005년 부산국제 영화제 최대의 화제작이었던 '용서받지 못한 자'(감독 윤종빈)는 이런 남성들의 '영장 사고' 이후 삶을 리얼하게 그렸다. 지금까지 개봉한 군대를 다룬 영화 중 현실감으로는 단연 최고가 아닌가 싶다. 군대라는 조직과 그 조직 특유의 문화에서 만들어진 병사들간의 묘한 긴장감, 계급이라는 권력을 가진 선임과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서도 굽힐 수밖에 없는 후임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선,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정치까지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러한 현실감 때문인지 등장인물 모두에게 깊은 공감이 된다. 저들이 왜 저러는지, 왜 저럴 수밖에 없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적어도 2010년 초반까지 육군에서 복무해 본 남성들이라면 이 영화에 공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갓 신병교육을 마치고 자대 배치된 이등병 이승영이 내무반 마루바닥에 걸터 앉아 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의 표정은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 사람처럼 초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선임들의 눈동자는 얄궂다. 승영이 당한 사고를 이미 겪어본 자들은 군대가 이끈 운명에 닳을대로 닳아 있다.

그 와중에 승영은 운 좋게도 중학교 동창인 유태정을 분대장으로 만난다. 태생적으로 불합리함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인 승영은 선임들과 자꾸 부딪히게 된다. 태정의 조언과 수많은 쉴드에도 승영은 '상초'가 될 때까지 군대 문화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때문에 승영은 입대 후에도 계속해서 사고를 당한다. 매일이 이중, 삼중, 사중추돌이다.

말년 병장인 태정은 그런 승영이 걱정스럽다. 태정이 승영과 단 둘이 담배를 태우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때 군대라는 조직을 몇 마디 만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대사가 나온다.

"야 승영아 너 조심해야겠더라. 너 요즘 말 되게 많어, 너. 나랑 있을 땐 괜찮아. 나랑 있을 땐 괜찮은데."

"됐어. 난 그런거 신경 안 써. 그 사람들 기준에서 그런 거지 내가 틀린 건 아니잖아."

"니가 틀렸다는게 아니라, 니가 그렇게 하면 나중에 힘들어져. 나 제대하면 너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괜찮아. 어차피 고참되면 내가 다 바꿀 거야."

"말이 쉽지, 근데 그게 말처럼 쉬울 거 같냐?"

"그래. 쉽지는 않겠지."

태정은 승영에게 선임들의 말에 무조건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승영은 자신은 그런 선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부조리한 조직 문화에 물들지 않기 위해 선임들과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몸부림을 친다. 갓 들어온 후임 허지훈에게 뽀글이를 몰래 끓여주고 "나랑 있을 땐 편하게 하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승영은 상병이 꺾일 무렵, 선임에게 "너가 만만한 선임이니까 상병이 돼도 고참 대접을 못 받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군 생활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다. 어리버리한 지훈이 자꾸 말을 안 듣자 '무시당하지 않는 선임'이 되기 위해 군대에서 살아가는 법칙에 따른다. 선임들에게 특A급 전투화와 새로 나온 전투복을 선물하며 비위를 맞출 줄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본인도 지훈이 과거 자신처럼 비뚤어져 나갈 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선임들에게 당한 것처럼 폭력을 휘두르며 "내무실에서 머리 박고 있으라"며 욕설을 내뱉는다. 승영이 선임들에게 말대꾸를 할 때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만하냐"고 했던 선임들처럼, 승영도 "내가 잘 해주니까 만만해 말을 안 듣는 것이냐"고 몰아치기도 한다.

지훈은 사랑하던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수차례 전화를 하며 매달려봤지만 끝내 매몰찬 답변을 듣고 난 뒤 삶의 의욕을 잃은 채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던 길이었다. 선임과 걸어가다 지훈과 마주친 승영은 수차례 "담배 불을 끄라"고 했지만 이미 삶의 의지를 일정 부분 내려놓은 지훈은 말을 듣지 않는다. 지훈은 승영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당한 뒤 화장실에 가서 전투화 끈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고참되면 내가 다 바꿀 거"라던 승영은 후임을 자살로 몰아넣었고, 조직 문화를 바꾸겠다고 호언했던 승영은 이 일로 한 모텔 방 욕조 안에서 손목을 긋고 자살한다. 어쩌면 지훈에겐 늘상 욕지거리를 하고 괴롭히던 선임보다 다정하고 자상했던 승영의 매몰찬 모습이 더 아프게 다가왔을지 모른다.

조직을 합리적으로 바꿔보겠다고 나섰던 이와 그 밑에서 '다른 선임'을 체험하며 커나가던 후임이 모두 죽으면서 이 영화는 군 조직의 불합리한 문화가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지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승영은 죽기 전 전역한 태정을 찾아가 흐느끼며 애원한다. "괜찮다고 얘기해줘. 괜찮다고 얘기해줘. 다 이해한다고." 지훈에게 용서를 빌 수 없는 승영은 태정에게라도 위안을 얻어보려 했지만, 태정은 매달리며 애원하는 승영에게 "괜찮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실제 군인들을 따라다니면서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생한 조직 문화를 보여준 이 영화는 결국 군 생활을 한 모든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 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군 생활을 거친 모두는 누군가에게 필연적으로 '용서받지 못한 자'임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