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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Jan 05. 2023

시끄러운 도로변 옆 조용한 한의원

한의원을 가는 이유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 달 전에 다친 발목이 좀처럼 낫지 않는 까닭에서다. 사실, 한의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내 몸속을 들키는 것은 꽤 반갑지 않고, 침 맞기 전에 버릇처럼 긴장하는 몸을 달래는 건 매번 힘들다. 어떤 침은 놓는 줄도 모를 만큼 안 아픈데, 아플지 않을 것 같은 부위에 맞은 침은, 놓아진 순간부터 침이 빼고 나서도 아픈 경우가 있다. 이런 복불복을 겪는 것도 싫다. 몇 개의 침이 더 남았는지 모르는 것도 싫다. 이 모든 불편과 아픔이, 다 낫기 위해서라는 말에 끄덕이는 것도 싫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좋아지는 발목을 보고 있자니, 나는 오늘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한의원에 간다.


시끄러운 도로변에는 조용한 한의원이 있다. 다 조용한데, 나랑 의사 선생님은 예외다. 나는 침 하나하나에 꽥 소리를 지르느라 조용할 틈이 없고, 의사쌤은 엉망인 내 다리와 발목을 보고 한소리 하는 까닭에 조용할 틈이 없다.


나의 아우성과 선생님의 잔소리는 침을 놓는 순간부터 침을 다 맞을 때까지 계속된다. 선생님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약 15분의 시간 동안, 나는 '아', '꺅', '으허헝', '살살해주세요' 따위의 약한 말들을 뱉는다. 중간중간 기가 죽은 '네'와 같은 대답 소리도 빠질 수 없다. 선생님은 나의 약한 말에 대항하기라도 하듯, '야채를 먹어야 낫는다'. '꼭 다양한 야채를 먹지 않아도 된다. 김치와 현미밥만이라도 먹어라', '안 좋은 걸 다 안 하고 좋은 걸 해야지만 괜찮아지는 몸이다. 일반 사람들 몸이 아니다', '먹고 싶은 건 나중에 낫고 먹으면 된다.' 살면서 많이 들어왔고, 앞으로도 지겹게 들을 말들인데, 유독 선생님의 말은 강하게 다가온다.


얼마나 강한지 정도를 묻는다면, 인스턴트에 환장하는 내가 불고기버거를 내려놓고 김치찌개를 먹었다는 정도로 해두자.


곰곰이 생각했다. 선생님의 말이 이토록 나에게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선생님에게 건선으로 흉해진 다리를 내보였다. 숨기고 싶어 하는. 나는 선생님 앞에서는 약한 부분을 내보였고, 약한 말들만 뱉어냈다. 선생님은 들여다보았고, 내가 뱉는 말들을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 감춰져 있는 내 마음도 보아서였다. 낫지 않을까 봐 두려운 마음과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지 못할 거라는 포기스러운 마음. 사실 낫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아마 낫지 못하고 평생 안고 갈 거라는 포기에 가까운 마음 말이다.


선생님의 말들이 강한 이유는 강한 말들 뒤에는, 힘이 있는 한마디가 덧붙어서였다.

'혜미 씨는 좀 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어요. 실패할까 봐 도전하지 않는 마음. 그럼에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혜미 씨만 갖는 마음이 아니라 동물의 본성이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명상도 하고요. 여유를 가지세요'


몸속을 들여다보시더니, 마음의 속까지 들여다보셨다. 시끄럽던 마음이 잔잔해진다.


침 맞는 게 싫어 미뤄 왔건만, 결국엔 제 발로 오고 말았다. 발목만 나으면 가지 않을 거라, 다니는 순간부터 마음먹었건만, 그 마음이 흐물해지고 있다. 발목이 나은 후에도, 종종 한의원에 가고 있을 내가 보인다.

아 그래도 진짜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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