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죽은 듯이 한 잠자고 일어났다고 해서 어제의 권고사직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유
있게 쉴 처치가 아니었다. 자취하는 곳의 생활비와 방세, 학자금 대출 상환과 내 동생, 반려 동물 미니
의 지병으로 매달 일정 부분의 약 값이 지출되고 있었다. 내 식비를 덜어 낼 순 있어도 그 아이의 약
값을 줄일 순 없었다. 곧바로 일 자리를 알아보았다. 채용 공고는 의외로 있었지만, 역시나 경력에 비
해 많은 나이가 걸림돌이었다. 그때 채용 사이트에서 본 문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별도의 나이 제한이 없었다. 즉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분은 사장님이셨다. 내 나이를 물어
대답하니
"혹시 얼마 전 00 실장이 말 한 그분인가요?"라는 말이 들렸다.
00 실장님은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한 분이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꾸준히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 내 권고사직 소식에 놀라 주변에 자리를 알아봐 주셨었다. 그러다 갑
자기 친구 회사에 디자이너 공석이 생겼으니 꼭 면접을 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해당 회사 실장님께
서는 예정한 면접이 어렵게 됐다며 전화를 주셨다. 이유는 사장님께서 내 나이가 많다는 것에 거부감
이 있으시다는 거였다. 나는 종종 겪었던 문제라 크게 실망하지 않고 지나 보낸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전화한 채용 공고가 바로 그 회사였던 것이다. 면접도 보지 않았기에 브랜드 상호 같은 기초 정보도 알
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렇듯 우연히 구인광고에서 연락이 되자, 사장님께서는 이것도 인연인 것 같으
니 면접을 보자고 하셨다.
사무실은 신당과 청구에 대부분 밀집한 동대문의 디자인 사무실과 달랐다. 답십리의 재개발 지역으
로 사무실보다는 가정집이 대부분이었다. 말씀해 주신 지하철역 출구로 나와 몇 걸음 걸으니, 1층에
회색 폭스바겐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간판이 없어도 그 차가 주차된 곳이 사무실이라고 하셨다.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빈티지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와 원목의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실장님과 사장님 그리고 사장님의 남편이 함께 계셨다. 면접 후 사장님께서 별도의 문자를 보내셨다.
사석에서 만날 수 있느냐고 물어 오셨다. 며칠 후 약속한 카페로 나갔다.
카페에서는 사무실 면접의 연장선상의 질문이 이어졌다. 나도 질문을 했다. 4대 보험을 들어줄 수
있는지를 여쭤봤다. 그러나 현 국가의 4대 보험 정책을 매우 불신하고 있으며, 시장 내에 4대 보험
을 안 드는(?) 단체에 가입을 하셔서 들어줄 수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게 꼭 필요하다면 3개월 뒤
지인의 건설 회사를 통해서라도 보험을 가입할 수 있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 4대 보험 등록 경로가 타
회사에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장님 말씀을 우선 경청했다.
" 00 실장님 통해서 들은 우리 실장님.. 일 해보면 아주 많이 다를 거예요. 그리고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점심은 도시락 싸서 다녀야 해요. 식대로 10만 원은 지원해 줄 수 있어요. 근데 실장님이 밥
만 싸오고 반찬을 안 싸온데요. 전에 있던 디자이너랑 이걸로 많이 싸웠는데... 괜찮겠어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어차피 자취를 하며 요리를 스스로 했기 때문에, 먹는 반찬을 조금 더 가져
온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나이가 많아서 내가 면접을 거절한 게 아니에요. 본인이 여기서 일하게 되면 우리 실장 일
하는 거 친구인 00 실장에게 들어갈 텐데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그건 안된다고 해서 면접 취소한
거예요. 지금 막내디자이너가 갑자기 나가서 실장 혼자 있어요. 2주째 샘플이 안 나오고 있어요.
일하면 내일부터 바로 나와야 되는데 할 수 있어요?"
무엇 하나도 예상할 수 없었던 말씀에 조금 넋이 나간 상태였다. 00 실장님께 들은 이 회사는 밤
시장에서 특색 있는 데님을 하고 있고, 좋은 원단을 사용하니 배울 것도 많다고 하셨다. 그리고 무
엇보다 00 실장님께서 본인이 아는 시장 디자이너 중 여기 실장님께서 가장 착한 분이라고 하셨다.
조금 망설였지만 공백 없이 일 할 곳을 앞으로 찾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다음날 나는 새 직장
으로 첫 출근 하게 되었다.
출근 첫날. 실장님이 먼저 오셔서 문을 열어 놓고 계셨다. 바닥을 쓸고 마대 걸레 질을 하면서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화장실은 청소한 지 오래되어, 암모니아 냄새가 올라왔다. 냉장고는 레트로 한 인
테리어 느낌에 맞춰 스메그 냉장고와 비슷한 디자인이었다. 귀여운 디자인과 달리 냉동고와 야채
칸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딱딱하게 굳어 비틀어져 있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거였다. 나는 이튿날
실장님께 시재를 조금 탔다. 음식물 종량제 봉투를 사서 냉장고 속 쓰레기를 버렸다. 화장실 청소용
세제와 청소솔, 세숫비누 하나를 사서 세면대에 올렸다. 말끔히 청소했다. 그리고 변기 수조 뚜껑 위
에, 사비로 사온 작은 레몬그라스 방향제를 올려 두었다. 나는 화장실이 깨끗한 회사는 번창한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를 뽑아준 이 회사가 잘 되길 기원하며 청소했다.
작업지시서란 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과정이 담긴 일종의 설명서와 같은 문서다. 옷의 형태가 그려진
도식화를 비롯해 사이즈 스펙과 부자재까지 기재되어 있다. 최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을 데
이터화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작업이 많아졌다. 하지만 회사는 손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
지시서를 사용했다. 더불어 청바지에 많은 디테일이 들어갔다. 여기에 필요한 부자재를 모두 디자이너
가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매듭을 비롯해 테이프 커팅은 물론 두꺼운 가죽을 잘라 패치로 사용했다. 또한
캔톤과 리벳을 일일이 손으로 갈아서 긁힌 자국을 만들었다. 이것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인 빈티지(Vi
ntage)를 표현하고 있었다.
현재 동대문 시장은 저가 데님에 잠식됐다. 청바지 브랜드마다 가지고 있었던 특색이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해 오며 운영하는 몇 안 되는 매장 중 하나였다. 예상했던 것도
다 더 많은 업무에 놀랐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배울 부분이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실 근처 걸어서 20분 정도에 메인 봉제 공장이 있었다. 재단을 하시는 사장님과 봉제를 하시는
사모님. 그리고 봉제와 시다 업무를 하시는 각 각의 선생님 두 분이 계셨다. 사장님은 매우 무뚝뚝한
분이셨지만 정이 많은 분이셨다. 그리고 패턴을 만질 줄 아는 요즘 보기 드문 공장 사장님이셨다.
(덕분에 근무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인사를 나누고 현재 생산 중인 옷을 보았다. 생산을 확인
하는 이곳만의 방식이 있었다. 일반적으론 작업지시서에 기재된 생지 사이즈 스펙을 기준으로 부위별
치수를 잰다. 봉제와 원단의 특성상 합복시 늘어남이 생기는 부분도 이 기준 사이즈를 보며 체크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의 작업지시서에는 어떠한 사이즈 기준도 없었다. 단지 메인전 샘플 옷 견본을 직접
대어 보고 눈대중으로 가늠하는 것이 이곳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사진 찍어 단체 톡 방에 전
송해서 보고했다.
회사에서 만드는 청바지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워싱에 있었다. 깔끔한 원단의 느낌을 보여주거나,
구제를 많이 넣어 과감한 형식도 아니었다. 컬러는 언제나 채도가 높은 맑은 파랑을 고수한다. 오래 입
어 낡은 느낌을 워싱을 통해 표현했다. 확실히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기엔 큰
단점이 있다. 작업 시간이 짧게는 5~7일, 늦게는 보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 워싱 만을 위해
공장은 별도의 인원이 갖춰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원단에 따른 약품과 열(온도)을 맞추는
것이 매우 고난도 작업이다. 그래서 예정된 출고 날짜에도 변수가 생겨, 옷을 재가공하기 위해 출고가 미
뤄지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다른 생산공정에서 차질이 생기면 워싱은 더 밀려, 바이
어와 사전에 약속한 날짜를 못 맞추게 된다. 그것은 고스란히 디자이너에게 질타로 돌아갔다.
변기 수조 뚜껑 위에 올려놓은 레몬그라스 방향제는 오래된 화장실의 암모니아 냄새를
잘 가려 주었다. 데님을 하겠다는 절박한 마음은 그 디퓨저의 향기처럼 내 눈과 이성에
막을 씌우듯 했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