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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Sep 18. 2020

6. 다이애나 브릴랜드- 색의 확장

청바지의 염료 인디고(indigo)  - 나만의 색이 가진 창조성






<  이미지 출처: 구글  >





화려한 아르누보 스타일 무늬의  벽지와 커튼 그리고 소파. 그 안은  선명한 붉은색으로 넘쳐난다. 곳곳에 매치한 테이블과 가구의 손잡이마저 검붉은 색상이 감도는 체리 우드 컬러를 사용해서 통일감을 주었다. 군데군데 자리 잡은 조명의 색과 액자의 프레임은 눈부신 황금빛으로 휘황찬란한 가운데 도드라지기보다 본디 태생이 그러하다는 듯 자연스레 어울린다. 마치 애니메이션 <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마법사 하울의 방처럼 복잡하게 온갖 진귀한 물건이 가득한 가운데 신비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이 과감한 인테리어는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아파트 거실을 꾸며 놓은 모습이다.




<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대표적인 패션. 터번과 볼드한 액세서리 그리고 담배도 빼놓을 수 없다. /  이미지 출처: 구글 >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의 본격적인 시대를 알리며 독보적인 전설로 남은 사람이다. 1936년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에 첫 칼럼 "why don't  you?"를 연재하며 에디터로서 커리어를 쌓게 됐다. 당시 하퍼스 바자의 편집자가 그녀의 옷차림에 탄복하여 제의한 것에서 시작했다. 타인에게 감동을 줄 정도로 고유한  패션 스타일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다채로운 문물을 경험한 유년시절이 기여한 바가 크다.






<  벨 엣 포크, 당시의 무드를 느낄 수 있는 그림 /  이미지 출처: 구글  >



<  1905년대  깁슨 걸 스타일  /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


<   좌: 1912년  사진                  중앙: 1913년  사진              우: 1914년 일러스트     /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




영국 증권 중개인 아버지와 미국 사교계 유명 인사인 어머니를 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다이애나는 자연스럽게 상류층 문화 안에서 향유하는 문화와 복식을 가까이 하며 심미안이 키워졌다. 1903년 파리에서 태어났는데 이 시기는 좋은 시대라는 뜻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라 명명한 시절에 포함됐다.

( 패션사에서는  1909년부터 1914년까지의 스타일을 말한다.)




대내외적으로 부강한 시기의 국가는 무궁한 문화유산을 만들 수 있는 기틀을 조성한다. 패션이 발달한 파리에서는 여성의 곡선미와 우아함이 느껴지는 깁슨 걸 스타일의 드레스와 발목으로 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호블 스커트가 유행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의 평화로운 시대상은 낭만이 흘렀다. 동양적 신비함이 느껴지는 아르누보의 영향으로 의복에 꽃과 덤불 모양의 자수를 수놓았다. 레이스와 프릴 장식을 더하고  동물의 깃털이 쓰이는  자유롭고 풍요로움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1914년 7월 28일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전 유럽은 전쟁에 휩싸였다. 4년 동안의 세계 전쟁으로 낭만과 풍요로움을 대표하던 벨 에포크 시대는 막을 내렸고, 전장에 나간 남성을 대신해 일을 하는 여성이 늘어났다. 사회진출의 용이함을 돕는 편안한 복장이 필요했다. 이를 계기로 몸을 옥죄어 중력에도 무너지지 않는 S라인을 만들어준 '코르셋'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곧이어 검정과 흰색으로 대표되는 무채색 계열 의 대중화가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기성복 시대가 도래했다.







<   좌: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어머니   /   우:  여동생 (사진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                              -  이미지 출처: Diana Vreeland: The Eye Has to Travel  영상 캡처  -




이와 같은 급진적  패션의 변화를 체험한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근대적 문화의 끝자락과 현대적 문명의 시작을 온몸으로 느끼고 체득했다. 옷이 주는 미학적 가치를 탐구했고  유행을 넘어 자신만의 독특함을 만들며 나아가 스타일을 창조했다. 이것은 그녀의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이기도 했다. 출중한 미모의 소유자인 어머니와 그 외모를 빼닮은 여동생. 타고난 아름다움 가진 가족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를 어릴 때 못생긴 작은 괴물이라 생각했다.



<  다이애나 브릴랜드  /  이미지 출처: Diana Vreeland: The Eye Has to Travel 영상 캡처  >


<  다이애나 브릴랜드와   토마스 리드 브릴랜드   /  이미지 출처: Diana Vreeland: The Eye Has to Travel 영상 캡처 / 구글   >


< 그녀의  부군에게  예사롭지 않은 패션 감각이 느껴진다.   / 이미지 출처: 구글   >


<  단란한 가족사진   /  이미지 출처: Diana Vreeland: The Eye Has to Travel 영상 캡처  >



창백한 피부에 깡마른 몸. 얼굴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매부리코는  그 당시 일반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 하지만  평생의 반려자  토마스 리드 브릴랜드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련되고 기품 있는 이 남성은 그녀에게  외모와 스타일에 대한 자긍심을 불러일으켰다. 지금껏  삶에서 내재된 문화자본은 풍부한 바탕이며 창조의 동력이었다. 패션 매거진과의 조우는  비로소 그 창의적 스타일을 세계를 향해 비상하게 했다.




<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  /  이미지 출처: Diana Vreeland: The Eye Has to Travel 영상 캡처  >


<  하퍼스 바자에  실린 데님(denim)  화보  /  이미지 출처: Diana Vreeland: The Eye Has to Travel 영상 캡처  >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디렉팅은 패션 매거진에 참신함으로 표현됐다. 획기적인 시도는 폰트와 색감, 사진의 레이아웃이 만드는 잡지의 예술성을 드높이며 진화. 후대에 이르기까지 참조할 동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한때 겪었던 본인의 외모 콤플렉스는 타인이 가진 장점을 극화할 수 있는 시각을 선사했다. 궁극의 미(美)를 보여주는 패션 잡지에 등장하는 인들은 그녀의 손길을 거치며 단점은 즉 '고유의  온전한 아름다움'으로  탈피한다. 노동자 계급의 작업복에서 시작한 데님의 대중적 인기에  기성복으로서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빨리 인지 하고 하이패션 매거진 화보에 등장시켰다. 시대를 앞서간 그녀의 혜안이 남다름은 셀 수 없이 많은 곳에 자취로 남았다.



<  좌:  Diana Vreeland: The Eye Has to Travel  포스터    /   우: 인디고 염료  -이미지 출처 : 구글    >






그녀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색(色)이었다. 창백한 피부색과 대비되는 비비드 한 빨간색으로 립스틱과 네일 컬러를 항상 맞추고 다녔다. 레드는 화사하고 강렬한 느낌으로 외모를 돋보이게 했다. 삶에 녹아든 이 색상은 본인의 진취적이고 정열적인 세계관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다양한 색으로 만들어질 각자의 특성을 존중하며 살아가라는 메시지였다.

 


만약 인디고(indigo)가  세상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다양한 이유로 지금의 청바지는 블루진이 아닌 다른 색의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현재는 너무나 당연한 데님의 컬러도 결국은 색이 존재하기 때문에 꽃 피 울 수 있었던 짙은 아름다움이다. 색의  확장이 거듭되며  보이는 개성은  더욱더 분명한 길을 보여 주었고, 데님의 변신은 인디고 염료라는 색의 본성이 일깨운 완벽히 변모된 세계다.


차가운 블루 따뜻한 레드로 대표되는 극명히 다른 두 색에서 제약 없는 창조성과 동질감을 느낀다. 이것은 진실로 자신의 삶을 아끼고 사랑했던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모두에게 남긴 마르지 않는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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