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다시 선물이 좋아졌다.
기념일, 경조사,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되어버린 크리스마스에도 나는 늘 주기만 하는 사람
이었다.그 대상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거래처를 가릴 것 없이 만인에게 평등했다. 이제
는 명언이 되어 버린 영화 <부당거래>의 대사,
여기서 파생된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는 속된 말로 호구. 딱 나를 두고 하는 얘기다.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보다 못한 사촌 언니는 내게
라며 조언을 하곤 했다. 이것은 받는 게 어색하고 주는 게 익숙한 착한 여자 콤플렉스의 전형적
유형이며 막내이지만 맏이 역할을 했던 가족 내 포지션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사양(辭讓)을 최고의 미덕이라 여겼던 지극히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양식이었다. 당장 내
사정이 곤궁해도 타인에게 느낀 고마움을 지나치지 못해 응당 성의 표시를 했다. 카카오톡 선물 보
내기, 축의금, 조의금, 카드나 편지를 동봉 후 정성스레 포장한 택배 보내기 등등... 38년 호구 인생
에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내게 축하받을 일이나 슬퍼할 일이 생겼을 때에도 나는 타인에게 쉽게 말하지 못했다. 두 가지 경우
다 폐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 편히 주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언제나 주는 입장인 사
람으로 각인된 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인 사이가 되다 보니, 내게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조차
내가 그들을 도운 것처럼 나를 돕는 사람은 없었다. 2019년 투병과 수술을 겪으며 확연히 깨달은 사
실이다. 오랫동안 지속됐던 양보와 거절의 미덕을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됐노라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
었다.'자동반사'와 같은 베풀기는 진정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정말 고마움을 느끼는 이들에게만 해도
충분하다고 결론지었다.
호구 인생을 타파하기 위한 나의 첫 번째 행동 강령은 표현하기. 특히 받는 것을 못하는 내가
당당히 말하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랜 습성은 쉽게 벗어 날 수 없었다. 입 조차 떨어
지지 않고 어렵게 이야기가 나와도 상대방 쪽에서 내게 '너는 착하잖아'를 시전 하며 스무드 하
게 넘긴다. 타인에게 이러한 취급을 받기까지 항상 퍼주기를 일관했던 나의 책임이 컸다. 이 나
이 먹도록 고치지 못 한 내 불찰. 2020년도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2020년 12월 16일. 브런치 구독 알람이 울렸다. 바로 볼 때도 있지만 요즘은 늦은 저녁이나 새벽에
몰아서 많은 작가님들의 글을 한 번에 보는 경우가 많다.(그래서 가끔 빼먹는 경우가..ㅜㅜ)
그런데 그땐 웬일인지 핸드폰에 단 하나의 알람이 있었고 바로 접속해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https://brunch.co.kr/@thewhalestar/78#comment
'웨일스타' 작가님께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그림엽서를 선물로 주신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작가님의 화풍과 글을 좋아하는 구독자로서 너무 반가운 이벤트였다. 게다가 추첨도 아니고 선
착순 댓글 신청이라니!
마음속 '표현하기' 행동 강령을 비로소 실천할 때가 왔다! 나는 순위에서 밀릴까 봐 재빠르게
댓글을 달고 일사천리로 이메일을 보내 작가님께 신청. 너무 감사하게도 신청을 기다렸다고 말
씀 해 주시며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다. 더불어 그림엽서 3장 중에서 2장은 내가 선택해서 원하는
그림을 받을 수 있기까지 하니 작가님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이후에 댓글을 통해 우편으로
보냈으니 우편함을 잘 봐 달라고 말씀 하셨다.
언제 오려나~ 하고 부지런히 우편함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오늘 2020년 12월 28일 오전, 고대하던
그림엽서가 도착했다! 카드 봉투부터 범상치 않은 귀여운 루돌프가 빨간 코를 내밀며 반기더니 질
좋은 종이에 선명하게 인쇄된 그림엽서와 메시지 카드 그리고 맛있는 곰돌이 젤리까지 들어 있었다.
오 마이~ 갓! 내가 요청했던 친필 싸인까지 잊지 않고 해 주시다니 나는 사진 몇 장을 찍고 바로 책상
앞으로 갔다.
마침 집에 남아 있던 액자. 신기하게도 그림엽서를 넣기에 규격이 딱 맞았다. 미니가 건강할 때
찍었던 소중한 사진 옆에 친필 사인을 받은 그림을 함께 놓았다. 이로써 다람쥐 산타는 나의 두
번째 행운의 수호천사로 합류하게 되었다.
웨일스타 작가님의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내게 생각지 못 한 또 다른 선물을 주었다. 애초
에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자 내가 타인에게 선물할 때 가졌던 초심의 마음. 받길 바라고 주지
않았고 진정 기쁜 마음에 먼저 행한 행동.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아닐지언정 그 당시 내가 좋아
서 선물로 표출 하고자 했던 일들을 상처로 봐선 안된다는 것이다.애증마저 느꼈던 선물이라는
그 말 한마디, 나는 다시 선물이 좋아졌다.
p.s: 웨일스타 작가님 선물 정말 감사합니다! 소중히 간직 할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