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의 수명, 그리고 나〉


요즘 “멋쟁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예전엔 나이 들수록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걸

미덕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에 대한 무심함이라는 걸 안다.


겉모습의 정갈함은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의 리듬이기도 하니까.


어릴 적, 옷을 사랑하던 어머니는

딸만 넷인 집안의 막내였던 내게

물려받기 없이 언제나 예쁜 새 옷을 입혀주셨다.


그 기억은 내 안에 남아,

‘내게 맞는 것’을 고르는 감각의 밑거름이 되었다.



50대의 나는 패션을 리추얼로 삼는다.


입고 싶은 삶의 모양을

먼저 옷으로 그려본다.



한때는

고가 브랜드를 두고두고 입겠다는 마음으로

과감히 구입도 했다.

그때의 두근거림은

오랜만에 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 자극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남은 것은

가격표가 아니라 ‘호흡감’이었다.

입을수록 내 몸과 생활에 맞아지는 옷,


그게 결국 나를 닮은 옷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새로움을 이기기 어렵다.

‘새 옷’은 그 자체로 일상에 활력을 주니까.


그러다 알게 되었다.

옷의 질이나 양보다 중요한 것은

‘선도(鮮度)의 수명’

이라는 걸.


아무리 고가라도

빛을 잃기 시작하면 어쩐지 마음이 흐려진다.


청바지와 흰 티셔츠조차 시대마다 다르듯,

나도 그때그때의 리듬에 맞춰

조금씩 다른 질감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 옷장의 기본 스타일 위에

계절마다 새로운 아이템 몇 개를 얹는다.

그건 단지 유행을 따르려는 게 아니라,

나의 리듬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세가

때로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특히 연애 앞에서는.


지인들은 말한다.

“너무 혼자에 익숙해서 그래.”

“이제 아쉬운 게 없잖아.”

“연륜이 새로운 관계도

금세 익숙하게 만드는 거지.”


그 말들 속에 내가 다 들어 있다.

내겐 사랑이 인생의 중심 챕터가 아니라,

이젠 가장 얇은 별책부록이 되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누군가를 만나 심심해진다 싶으면

나는

자꾸 관계를 ‘정리’하려는 쪽으로 흘러가곤 한다.




며칠 전, 12년째 함께 일하는 부원장이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넸다.


“원장님은 제가 좀 잘 알잖아요.

이번엔 그냥 내버려 두어 보세요.

물건엔 유통기한이 있지만

사람 관계는, 둘수록 더 괜찮아질 때도 있거든요.

익숙해지고 나서야 새롭게 느껴지는 사이,

가끔 있잖아요.

이번엔 왠지 그럴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새 옷을 사듯 연애를 시작해 온 나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 셈이었다.


“이번엔 그냥 좀 더 입어보세요.

몸에 맞아갈지도 몰라요.”


나를 잘 알고,

아껴주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10년 전 산 가방 하나가 있다.

처음부터 눈에 쏙 들어온 건 아니었다.

그저 무난할 것 같았다.

하지만 써보니 가볍고 실용적이어서

새 가방을 사도 결국 그 가방만 들게 됐다.


어느새 낡아 손이 가지 않게 된 그 가방을

이번에 수선 맡겼다.

견적은 거의 구매가와 비슷했다.

잠시 망설이다 수선을 부탁했다.

이제 그 모델은 나오지 않고,

무엇보다 오래 쓴 것을 잘 손질해

다시 잘 써보고 싶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한 답례로.



내가 원하는 나이 든 내 모습은

세파에 닳아 낡은 사람이 아니라,

세파에 다져져 단단한 사람이다.


닳음이 아니라, 다듬음의 결과.


그게 내가 바라는,

‘새로움의 수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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