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나는 분명 여기에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거울 속의 얼굴이 낯설다.
이마의 선, 눈가의 미세한 그림자,
모두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지구인들의 말로 하자면, “늙었다.”
그 말이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나는 잠시 거울 앞에 서서 생각했다.
지구인들과 정말 같은 시간을 산 걸까?
어쩌면, 그들과 시간을 ‘공유’ 한 게 아니라,
시간이 나를 ‘끌어안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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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관찰자였다.
지구의 감정, 지구의 시간, 지구의 기후를
모니터 너머에서 기록하던 어떤 별의 우주인.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걸 직접 느끼고 있었다.
슬픔엔 눅눅해지고,
기쁨엔 들뜨고,
외로움에는 커피가 식는다.
나도 모르게,
이 행성의 속도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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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래된 기억이 스친다.
그 시절 나는 내 별의 연구동에서 근무했다.
관찰 대상이었던 지구에 사는 그녀에게
내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점점 늘었다.
그게 문제였을까.
좌천인지, 자원인지—이 별로 오게 된 이유가
이젠 가물가물하다.
기억 속 그녀의 얼굴은 희미해져 버려
이젠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이 별에 있을까.
혹은 나처럼,
어딘가 다른 별로 가버렸을까?
⸻
하늘이 유난히 맑던 어느 아침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출근길에 나섰다.
횡단보도 앞, 신호를 기다리는데
묘하게 심장이 뛰었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다.
신호등이 파랗게 변했다.
사람들이 흐르듯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녀도 자연스레 그 흐름 속에 있었다.
나는 터질듯한 가슴으로 그녀를 향해 다가가려던 그 순간—
횡단보도 맞은편에,
한 여인이 여전히 멈춰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신호음이 고장 났던 것이다.
흰 지팡이를 쥔 손,
조용히 흔들리는 흰 머리카락.
시각장애인 여성이었다.
신호는 이미 바뀌어가는데,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듯했다.
그 순간 내게 다가오던 그녀가
뭔가 눈치챈 듯 급히 돌아선다.
그녀는 돌아가
그 여인의 팔짱을 조심스레 끼었다.
그녀는 급히, 그러나 단단한 걸음으로
다시 길을 건넜다.
파란 불이 깜박이는 사이,
두 사람은 나란히 안전한 쪽으로 걸어왔다.
한순간이 그렇게 스치듯 지나가버렸다.
나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심장은 여전히 뛰었지만,
이유가 달라졌다.
⸻
신호가 다시 빨갛게 변했다.
그녀는 여인을 안전하게 인도한 뒤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오래 서 있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그녀와 나,
각자의 방식으로 이 별에 적응한 시간들이 고요히 스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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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를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로 생각지 않는다.
수많은 지구인 중 한 사람,
하루의 리듬에 맞춰 숨 쉬는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고,
바람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바람과 함께 깊이 호흡하며 살며시 눈을 감아본다.
“때때로 감정이 나를 무겁게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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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는 더 이상 별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그 별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기억으로 담겨있다.
나는 분명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