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사는 사람은 모르는 것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면적’으로 복리 된다



요즈음 12년 된 샵을 새롭게

준비가 한창이다.


일부 리모델링 도면을 그리다,

나는 초등학교 수학을 틀렸다.


1/4로 줄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지나치게 작았다.


잠깐 멍하니 도면을 바라보다가

이유를 깨달았다.


면적을 줄이려면

길이를 같은 비율로 줄이는 게 아니라,

1/4의 면적은 길이를 1/2로 줄여야 만들어진다는 것.


당연한 이야기인데,

한 번의 오류로 낯설어졌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생각했다.


아,

나는 지금까지

이 두 계산법 사이를 오가며 살아온 건 아닐까.



우리는 자꾸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크게

‘길이’를 늘리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해야 할 일은 계속 늘어나고,

접시는 하나씩 더 올라갔다.


언젠가 다 깨질 것 같다는 불안 속에서도

멈추지 못했다.


그 불안이 더 커질까 두려워

다른 삶을 꿈꾸기도 했다.


적당히 벌고,

조용히 쌓고,

무너지지 않는 삶.


그게 완성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길이를 늘이는 대신,

면적을 만들어가는 쪽으로.


겉으로는 느려 보이지만

안쪽은 훨씬 단단해지는 방식으로.


이번 리노베이션도 그렇다.

외형 변화라는 틀을 갖고

내면을 다시 리세팅하기.


직원들이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구조,

그걸 만들기 위해

나는 내 몫을 줄여가며

그러나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준비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가끔 흔들린다.


숫자는 언제나 냉정하고,

현실은 생각보다 무겁다.


그래도 이제는 믿는다.


빠르게 만든 것은 쉽게 무너지고,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속도로도 확장된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나는

속도를 줄이고

구조를 만드는 쪽에 서 있다.




맞다.

한때는

일이 늘어나는 것이 두려웠다.


접시 하나가 더 올라갈 때마다

언젠가 모두 깨질 장면을 먼저 떠올렸다.


그래서 “유유자적”이라는

안전망으로 도망가고도 싶었다.


그런데 지금 떠오르는 장면은 다르다.




나는 종종

묘기대행진의 무대 위에 서 있는 나를 떠올린다.


한때는

접시를 하나 더 올릴 때마다

깨질까 봐 조마조마했던 출연자였는데,


어느새

올릴 수 있는 접시는 다 얹혀 있고,

그 접시들은

저절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이따금 손을 얹어

균형을 조율한다.


속도가 조금 느려지면 살짝 돌려주고,

때가 되면

하나씩 차분히 내려놓는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를 향해

조용히 두 손을 펼치며

“짜잔” 하고 환한 모습으로 서 있는 장면.




이제야,

그 엔딩을

조금은 더 정면으로 바라본다.


… 생각보다,

떠올리고 있는 지금의 나도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 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