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개봉하면 늘 따라붙는 말이 있다.
“손익분기점 몇 만 명.”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는 기준.
그 숫자를 넘으면 성공, 넘지 못하면 실패다.
내 인생에도 손익분기점이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나는 한때
열심히 일해서
적당한 나이에 은퇴하는 삶을 생각했다.
일은 버티는 것이고,
돈은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한 보상이었다.
—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생각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일을 그만두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
생각해보면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간다.
사실은 갖고 싶은데
“별로야”라고 말해버리고,
귀찮은 일을
“지금은 절약해야지”라며 미루고,
두려운 선택을
“신중한 거야”라고 포장한다.
때로는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나를 설득하며 살아간다.
—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설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때가 온다.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게 현실이 아니라
내가 나를 설득해온 방식이었다는 것을.
—
나를 설득하는 일은
또 다른 포장이고,
어쩌면 회피일지도 모른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은
괴롭고, 부끄럽고, 두렵고,
때로는 나를 어지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향으로 가보려 한다.
그 위에서야 비로소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이 보이기 때문이다.
—
그때부터 선택이 조금씩 달라진다.
비싸도 괜찮고,
조금 번거로워도 괜찮고,
때로는 불편해도 괜찮다.
대신
나를 속이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어진다.
—
어쩌면 인생의 손익분기점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내 삶에 더 이상 자기 모순을
쌓아가지 않게 되는
그 시작점인지도 모른다.
—
나는 요즘
그 지점을 지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를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을
하나씩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
그래서인지
일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졌다.
나는 이제
일을 줄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답게 일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
나의 진짜 일은
어떤 직업이 아니라
하루의 시간과
내가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그 안에서 쌓이는 일상의 밀도일 것이다.
그리고
직업으로서의 일은
그 안에 들어 있는 하나의 일부일 뿐이다.
—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 문장이 떠올랐다.
손익분기점을 지나
회수 구간으로 들어서는 것.
—
회수 구간은
단순히 무엇을 되찾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속이지 않는 선택을
하나씩 건너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
요즘 나는
무엇을 더 해야 할지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선택이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
—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