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친절
나는 딸만 넷인 집의 막내다.
큰언니와 나는 열한 살 차이가 난다.
위의 두 언니와 셋째 언니와도 나이가 조금 떨어져 있었고,
여러 사정으로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집에 자주 계시지 못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는 늘 최신형 마론 인형 세트와 유명 브랜드 옷을 입고 자랐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귀티가 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엄마에게 받은 선물 중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건네준
집에서 자라난 미나리 순으로 꾸민 작은 바구니.
사실 나는 급하게 준비한 선물임을 알았다.
그런데도 그걸 받았을 때 나는 참 좋았다.
어쩌면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공이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큰언니는 이미 대학생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K-장녀.
우리 언니는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
어느 어린이날이었는지,
언니는 나에게 창작동화집 [육손이]를 선물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창작동화를 읽었다.
우리 집에는 언니들 때부터 내려온 오래된 전집 동화가 전부였기에,
어쩌면 나는 그래서 텔레비전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의 이야기와 그림은 지금도 선명하다.
어린 나에게는
너무 재미있고, 너무 새로운 세계였다.
우리 집 서열 1위는 둘째 언니였다.
어린 기억 속에서 큰언니가 자애로운 얼굴로 떠오른다면,
둘째 언니는 좋게 말해 카리스마,
솔직히 말하면 폭군이었다.
해질 무렵 학교가 끝날 시간이 되면
집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마침내 언니가 들어오면
놀러 온 친구들은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고,
언니는 가방을 던져놓고 소파에 누웠다.
그러면 나와 셋째 언니는
자연스럽게 심부름꾼이 되었다.
상냥한 셋째 언니는 조용히 움직였지만 나는 종종 저항을 선택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건 더 차가운 냉대였다.
억울한 마음에 엄마와 아빠에게 호소해 본 적도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언니를 장악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야기는 늘 흐지부지 끝났다.
그래도 언니들 덕분에 나는
일찍부터 음악과 문화 속에서 자랐다.
여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열린 창문 사이로 레코드음악이 흘러나왔다.
외국인 남자 두 명이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너무 감미로운 노래였다.
그 노래 속에서 한 문장이 반복되었다.
Perhaps love.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집에는
무서운 둘째 언니밖에 없었다.
그래도 결국 물었다.
“언니… 펄햅스러브가 무슨 뜻이야?”
언니는 시크한 얼굴로 말했다.
“아마도… 사랑은?”
그날의 날씨 때문이었을까.
창문 사이로 들어오던 바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노래 때문이었을까.
그날의 둘째 언니는
평소보다 조금 더 친절해 보였고,
어쩐지 멋지고 든든해 보였다.
위의 두 언니들과 달리
셋째 언니는 내게 거의 유일한 친구이자 내 편이었다.
힘든 가정 속에서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이
내 십 대를 지켜주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이십 대를 보내고
나는 가장 혹독한 서른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어느 날 피곤에 지쳐
잠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다.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데
벨소리가 울렸다.
문을 열자
셋째 언니가 서 있었다.
“비 와서 마침 트럭에서 샀다.
홍게 한 봉다리.
그리고 백세주.”
그 순간
아주 오래된 기억이 겹쳐졌다.
어릴 때 집에 혼자 있던 나는
점심이 지나면 복도로 귀를 기울였다.
조금 지나면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올라오는
셋째 언니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현관문을 열었다.
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 줄려고 가져왔어.”
그리고 가방 속에서
아껴두었던 급식 옥수수빵을
꺼내 건네주었다.
비 오는 오후,
홍게와 백세주를 앞에 두고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안심과 위로를
함께 먹는 시간이었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언니들에게 각각 해준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십 년도 훨씬 전에 잠깐 함께 일했던
후배가 연락을 해왔다.
결혼을 앞두고
예비 신랑과 함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며
후쿠오카까지 찾아왔다.
식사를 하며
후배는 나와의 기억에 대해 말했다.
예비 신랑도 거든다.
그 얘기 교제 전부터 들었다고.
그래서 결혼 전에
꼭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계속 생각했다.
내가 그랬다고?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친절이라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오래 기억하고 있는 것.
Perhaps love,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