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목숨을 거는게 아니라 게임을 하는거야

아님 말고

by miel





두 사람이 길을 간다. 한 사람은 학교에 가고, 한사람은 데이트를 하러 간다. 지금 둘은 완전히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는 도파민이 뿜뿜 나오며 한사람의 마음에서는 의무감이 가득차있다. 둘중에 누가 행복할까. 아마도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 더 행복하겠다.



두사람이 인생을 살아간다. 한 사람은 의무감이 주를 이룬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고 한사람은 게임을 하듯 퀘스트를 처리하며 살아간다. 10대부터 40대까지는 인생을 숙제하듯이 살았었다. 얼굴은 어둡고 세상은 너무 이해되지 않는 수학숙제 같았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정리되지 않는 고민들로 괴로웠던 시절이 청춘이었다.





지금에 와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마인드로 살아가는 게 가장 행복할까를 생각해보면, 인생은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하는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현실도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의무감이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 좋은 결과를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전에 설정되어야 할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즐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환경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정신적인 수준이 필요하다. 더 높은 정신적 수준은 그만큼의 고뇌와 에너지를 요구한다.






의무감은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을 뛰면서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설레임, 좋아하는 감정, 사랑의 마음에서 흘러나온다. 사랑하는 것은 어떠한 어려움도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어떠한 마음인가. 실패해도 아무렇지 않는 것이다. 성공하면 최고의 기쁨인 것이다. 결과로 인해 부정적인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흙수저인 나도 인생을 배수진 치며 살아왔었다. 그러나 오히려 지속력을 떨어트리고 너무 많은 걱정과 고민으로 에너지를 방전시켜 매번 번아웃이 오고는 했다. 50세라는 나이에 펼쳐진 인생 2막은 인생을 즐기는 마음으로 게임하듯이 살아간다.






열심히 살아가는 디폴트는 똑같다. 여유있고 또한 의무감 없이 일 그 자체를 즐기며 사람과의 교감을 즐기며, 성장해가는 자신을 즐기며 살아가려고 하고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삶의 방식의 변화가 가능한 이유는 의무감으로 살아온 지난날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는 회고이자, 즐기면서 살았더라면 더 잘 해냈을 거라는 복기의 결과이다.



인생은 무엇이든 즐거워야 한다. 잠을 자는 것도 편안하고, 밥을 먹는 것도 기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겁고, 티비를 보건, 유튜브를 보건, 봉사활동을 하건, 일을 하건 즐겁고 신나고 기쁜일이어야 한다. 운동도 자신이 즐거운 방식으로 댄스를 하든 마라톤을 하든 산책을 하든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의 전제는 내가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그랬을때 가장 좋은 시너지와 열정과 창의력이 발현된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량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잠을 줄여서 하루 컨디션이 엉망이 되거나, 재정의 선을 넘어선 과도한 열망이나, 과도한 목표성취만을 보고, 장점이나 긍정적인 것이 아닌 단점과 부정적인 것에 촛점이 맞춰진 인간관계는 불편하고,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반감시킨다. 타인이 불평과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니므로 시간이 과거로 흘러가고 있듯이 시간과 함께 흘려보내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결단이고 다짐이며, 선언의 중심속에서 모든 줄기들을 행복한 방식으로 만들어 가면 된다. 가령 정말 싫은 사람과 직장에서 근무를 해야한다면 그 사람과 교류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거나, 자신이 능력이 된다면 다른 곳으로 배치를 요청하거나, 최악의 상황에서는 이직일 수 있겠지만 어디가나 빌런은 있기에 초연해지는 것이 정답이라고 본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초연해지지 않고 행복해질 수 없다. 어떤 일에든지 얽매이지 않아야 하고 휘둘리지 않아야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의 감정의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게임은 피해를 보거나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얽매이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인생은 다르잖아요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요. 라고 말하신다면 오히려 게임이라는 전제는 감정을 이성적인 상태로 만들어준다. 감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객관적인 상황인식과 판단과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최고의 선택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연애에 있어서도 그렇다. 사랑이라는 진심으로 연애를 하지만 실제 연애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감정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자기오류에 빠져 버린다. 연애야말로 진정한 게임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진실해야 함은 당연한 진리이다. 이 진리가 어긋나는 순간 게임은 막장이 된다.



연애는 진지한 감정이지만 게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감정과 나의 감정이 같은 온도를 가져야 하며, 상대가 나에게 호감과 그 이상의 설레임이 없다면 그 게임은 종료된다. 사랑은 철저하게 둘의 관계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애가 게임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그 게임은 종료하지 못하고 집착으로 얽히기 시작한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게임을 가질 수 있다. 한 번의 실패는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다. 여러번 실패를 해야만 실패라 이름하는 경험의 과정에서 지식에서 얻을 수 없는 지혜를 갖게 되어 성공을 이루어 가기 때문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삶을 끝내는 이유는 인생을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나 진지하고 너무나 처절하고 너무나 절박했기 때문에, 다음단계가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인생에는 누구나 혼자이며 자신의 몫의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야만 한다. 인생의 기회는 한번만 있는 것은 아니다.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에게 기회란 수도 없이 몰려온다.







단지 자신이 게임을 진행할 에너지가 있다면 말이다. 지난번 실패로 돈 한푼 없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에너지인, 기쁨과 만족과 즐거움을 유지하고 여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고,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안정이라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인생의 시련도 다음 차원의 게임으로 넘어가는 단계이다. 시련에게 고맙다고 느낄때는 더 이상 작은 시련에 연연해 하지 않을 때이다. 인생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도 ,과정속에서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고 빈손으로 간다. 인생은 게임이 맞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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