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김도윤)에서 배우는 진화
안녕하세요. 호모미미쿠스에서 평온하게 서식 중인 알파카입니다. 팀 내 유일한 문과생(아니 예술학도)인 제가 세운 2019년 새해 계획은 바로 '과학책 읽기'입니다. 과학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작심삼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작을 못 하고 있었으니깐요! 그래서 생각을 좀 바꿔보았습니다.
*호모미미쿠스에서는 각자를 상징하는 동식물을 정했는데, 전 알파카입니다. 귀엽고 싶습니다.
만화'책'도 '책'이다(합리화 아님)
첫 책으로 김도윤 작가의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를 선택했습니다. 대망의 첫 장은 부산행 KTX산천 안에서 펼치게 되었고요. tmi
미리 고백하자면 저는 곤충에 관심이 없습니다. 얼마 전 팀 인터뷰(▲ 귀뚜라미 4천 마리를 위한 아파트 만든 물리학도)를 진행하면서 곤충에 대한 이야기를 단기간에 많이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 '단어'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펼치면 나오는 간지 다음에 <곤충...!>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쩐지 본격적인 느낌이라 살짝 긴장했습니다만 잘 극복하고 무사히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게 되었고, 그 내용을 세 가지 질문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A.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내용을 힘겹게 떠올린 결과, 다리 여섯 개, 날개 두 쌍, 아... 더듬이도 있었나? 정도의 지식이 나옵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도 저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답을 합니다. 당연히 땡! 날개 없는 곤충이 태반이란 답이 돌아옵니다. 곤충은 1. 동물(Animal Kingdom)이고요, 2. 절지동물(Vertoevrata)이라고 합니다.
3. 절지동물을 분류하는 기준은 바로 '다리'입니다.
3-1. 먹이를 쥐는 뾰족한 부속지가 있는 협각아문(Chelicerate)- 거미, 투구게, 전갈, 응애 등
3-2. 다리가 무척 많은 다지아문(Myriapoda) - 지네, 노래기 등
3-3. 매우 친근하게 들어본 갑각아문(Crustacea) - 게, 새우, 따개비, 쥐며느리 등
3-4. 우리 뇌에 '곤충'으로 분류된 다리 여섯 개의 육각아문(Hexapoda) -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사마귀 등 사실 톡토기, 낫발이, 좀붙이 같이 원시적인 내구강도 있지만 이들은 우선 곤충으로 취급하지 않기로 합니다.
우리(아님 저)가 알고 있는 곤충의 정의는 육각아문에 한정된 것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결론)
다시 곤충에 집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의 첫 장으로 돌아와 볼게요.
곤충은 전 세계에 걸쳐 80만 종이 살고 있다. 바다를 제외한 모든 곳에 살며(일부 소금쟁이는 바다에 살기도 하나), 심지어 히말라야 해발 5천 미터쯤인가 어딘가에서도 산다. 할튼 덥든 춥든 습하든 건조하든, 지구 어디에나 별의별 괴랄맞은 형태로 살아가고 있으며, 학자들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곤충이 수천만 종은 더 있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다 p.1
무려 80만 종입니다. 학자들이 추정하건대 밝혀지지 않은 곤충은 수천만 종에 이르고요. 책의 초반에 곤충의 역사가 나오는데,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정말 재미있습니다. (일독 추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중에서 제가 집중한 것은 곤충의 진화에 영향을 주는 두 가지 요소였습니다.
A. 하나는 '날개'고 하나는 '성선택'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곤충의 모습을 만드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곤충의 역사를 뒤바꾼 '날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곤충에게 날개는 '날기 위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요. 체온 유지에 유용한 널빤지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적을 위협하거나, 소리를 내거나, 이성에게 과시를 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딱딱한 날개를 가진 곤충은 날개를 통해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도 합니다. 사막에 사는 딱정벌레는 이슬을 모아 수분을 섭취하는데 날개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곤충들은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날개를 사용했고 그 과정에서 발달한 날개를 비행용으로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날개의 기원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있었지만, "왜! 날개가 생기고, 발달했는가?"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죠?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식물이 커지면서 곤충이 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p.72
식물 사이즈가 커지면서 곤충이 식물 사이를 좀 더 쉽게 옮겨 다니려고 날개가 생겼고, 점차 발달해왔다는 것 즉 '환경적인 변화'가 곤충의 날개 생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네요.
다음으로 성선택에 대해 알아볼게요. 곤충의 '성(性)'은 유전적인 다양성을 넓히게도 했고, 멸종에 이르게도 했습니다.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는 사실이죠.
이 세상 거의 모든 종에서 90% 이상의 수컷은 암컷 근처에도 못 가보고 죽는다. 10억 년 전, 유성생식이란 것이 탄생한 이래, 생물들은 이성에게 호감을 사고자 눈물 나는 생쇼를 펼쳤다. 이성에게 선택되고자 하는 치열한 투쟁을 성 선택이라고 부른다 p.140
성선택은 찰스 다윈이 1859년 진화의 원동력으로 제시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당시 함께 제시했던 '자연선택' 개념과 다르게 제시한 지 100년이 지나서야 주목을 받게 되었죠.
책에는 곤충들의 구애법이 아주 재미있게 소개되어있습니다. 이걸 인간에게 대입해 읽다 보면, 가끔 위험할 정도로 과격하고 파격적이란 생각도 듭니다. (작가도 계속 이해를 돕기 위해 의인화했지만, 분리해 생각해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로맨틱까진 아니더라도 인간과 비슷한 '노력'을 거치는 곤충도 있죠. 성선택을 받기 위해, 잘못된 방향으로 진화하거나 생존에 대한 강한 집념으로 독특한 성생활을 하는 곤충들을 보면 '생존'의 치열함은 지구 어디에든 존재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A. 진화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점점 나아진다, 우월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책의 저자는 '진화'가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화는 절대 '진보'를 뜻하지 않는다. 생물이 그저 그 환경에 알맞게 적응하는 것뿐이다. 진화가 진보와 우월을 뜻한다는 관점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 잘못된 사고관의 잔재다. 몇몇 생물이 생존을 위해 이것저것 하다 보니 생명현상이 좀 더 복잡해졌을 뿐 결코 진보한 것이 아니다. pp.124-125
자연에서 '진보'란 개념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환경에 최적화하기 위해서라면 신체 중 일부를 퇴화시키거나, 발달시키며 이상한 모양새가 될 수도 있고 (가만히 생각하면 '이상한 모양새'도 참 인간적인 관점이란 생각이 드네요) 상상을 초월하는 돌연변이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처한 환경에서 잘 살아남는 것이 바로 '진화'인 것입니다. 환경이 시시각각 바뀌니, 생물의 진화도 결코 멈출 수 없겠죠?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를 읽으면서 곤충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에피소드를 만화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진화'에 대해 제가 잘못 알고 있던 정의를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저는 '진화'를 굉장히 '결과론적'으로 바라보았다면 이 책을 읽고 난 뒤 '진화'는 '진행형'이 되었고, 어떤 환경을 바라보는 사고가 조금 더 확장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처음엔 설렁설렁, 두 손으로는 중간중간 귤을 까면서 읽던 책을 기차에서 내려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시켜놓고 꽤나 진지한 자세로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죠.
첫 번째 고른 책이 만화였던 점, 적당한 드립과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과.알.못인 제가 과학책 한 권을 뚝딱 읽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새해가 돼서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혹은 '삶이 무기력'하거나, '생존' 그리고 '진화'에 대해 색다른 인사이트를 얻고 싶으신 분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그럼, 저는 두 번째 책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