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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제 May 12. 2023

처음 만나는 자유

진정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원 영문 제목은 'Girl, Interrupted'인데 한글 제목이 참 잘 지어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수잔나는 처음에 정신병원에서 자유를 맛봤지만,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닌 울타리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임을 깨닫는다. 결국 자기 자신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 





간단한 줄거리



수잔나 케이슨은 수면제 한통을 비우고 자살 미수로 인해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 자살하려는 것이 아님을 극구 부인하지만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병명으로 정신 요양원에 장기 입원을 하게 된다. 그녀는 그곳에서 여러 환자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이상하게 바라봤던 사람들은 알아가다 보니 모두 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과 어울리며 통쾌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내다가 점차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다 어느 날 간호사 발레리를 조롱하다가 생각의 전환을 맞이하는 말을 듣게 되고, (넌 그냥 게으르고 제멋대로인 것뿐이야. 스스로 미치도록 몰아갈 뿐, 넌 그냥 인생을 허비하고 있지.)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현실을 직시하며 바라보는 노력을 시작하게 된다.




기억에 남는 대사



저러면 내가 짜증 나는 줄 알아.


'경계성 인격장애는 자아상과 인간관계 정서가 불안하고 목표가 불확실하다.

행동이 충동적이며 자해를 하기에 가볍게 성관계를 한다. 모순된 사교성이 보이며 보통 비관적인 태도가 관찰된다.'

이게 나야.. 안 가벼운 성관계가 어디 있어? 난 문란하지 않아. 아니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앞으로 힘든 날이 있겠죠.

하지만 이제 난 상관없습니다. 난 산 정상에 올라 봤으니까요.


난 아침에 여기 없거든요.

당신이 아침에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잖아. 그래서..


"존.. 왜 날 좋아해요?"

"그냥 좋아해요. 이유는 없어요. 당신이 회복됐으면 좋겠어요.

난 당신과 같이 나가서 영화 보고 싶거든요."


양가감정이란 반대 감정이 강력하다는 거야.

양손잡이처럼, 이 접두사 뜻은 '동시에'지. 나머지는 '힘'이라는 뜻이고,

즉, 네가 상반되는 두 행동 방침 사이에서 괴롭다는 거야.


'무슨 세상이지? 어떤 왕국일까? 어떤 세상의 어느 해변이지?'

네가 직면할 중요한 질문이야. 네가 살면서 택해야 할 선택이지. 언제까지 네 문제 속에서 방황할 거니?

네 문제가 뭐지? 문제가 맞긴 해? 그 문제를 끌어안고 평생 이곳에 있을 거야?

중요한 질문이고 중요한 결정이야.


미친 사람들의 이상한 짓을 많이 봤지만 넌? 넌 미치지 않았어.

넌 그냥 게으르고 제멋대로인 것뿐이야. 스스로 미치도록 몰아갈 뿐,

넌 그냥 인생을 허비하고 있지.


넌 다 이해하고 있어. 방금 아주 명료하게 말했잖아.

네가 해야 할 일은 그걸 글로 쓰는 거야. 노트에 다 쏟아내. 속에 있는 걸 다 끄집어내렴.

다시는 괴롭지 않게 말이야.


넌 이미 죽었으니까,

네가 죽든 말든 아무도 상관 안 해. 넌 이미 넌 죽었거든.

네 심장은 얼어붙었어. 그래서 여기로 계속 돌아오는 거잖아. 넌 자유롭지 않아.

넌 이곳에서만 살아 있다는 걸 느끼잖아. 참 불쌍하다.


1년을 허비했어. 세상 밖 사람들이 거짓말쟁이고 온 세상이 바보 같아 보일 수 있어.

그래도 저곳에 가고 싶어. 저 세상 속에 있고 싶지. 너랑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걸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몇 가지들만 적어보겠다. 어느 책에서 봤었는데 정신과 질환을 앓는 경우 '게으름'이 최대 악으로 작용한다고 하더라. 스스로 해결해 나갈 노력을 하지 않고 자신을 게으름으로 방치하고 있으면서 겉으로 드러난 신체화에만 몰두하며 긴 시간을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수잔나와 리사, 데이지, 폴리 등 여러 등장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고통 속에 가두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상처와 고통을 받은 현실을 회피하면서 그와 조금이라도 연결되는 사소로운 일상에서 분노를 끌어내고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어내며 고통에 고통을 더해간다. 과거의 문제가 현재와 미래까지 계속 끌고 가는 것이다. 수잔나는 정신병원에서 1년을 허비했다며 말하는데, 내가 느끼기엔 상당히 짧아서 놀라웠다. 그리고 이 일화는 실화를 담은 회고록이 원작이라는 사실에 더 놀랍더라.


그녀에게 처음 만나는 자유는 정신병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말에 다다를수록 이야기가 달라진다. 진정한 자유는 자기 자신에게 있으며 세상 속에에서도 누릴 수 있다. 사실 정신병원에서 만나는 자유는 현실도피성이었다. 그래도 그 안에서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을 겪었다고 생각된다. 처음에는 리사를 이상화하지만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며 현실화로 바뀌어간다. 그래도 리사를 아끼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쓴소리를 마음 아파하며 쏟는 것은 아끼는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니까. 그것이 경계성 성격장애가 끝났음을 보여주는 모습처럼 보였고 그녀가 정신과 질환에서 탈출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본다. 수잔나는 그곳에서 결국 나오게 됐지만 그 안에 있던 친구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저 경험과 기억, 추억이다. 더 이상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점에서 그녀는 성장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된다. 회피하고 억압하는 동안에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간적 경계성 혼란을 겪었지만 문제를 직시하며 바라보고 풀어낼수록  더 이상 그 문제의 억압으로 생기는 이상 현상은 생기지 않았다. 다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 이해하게 되고, 그녀의 시간은 현재에 존재하게 된다.


정신병원의 친구들이 어떠한 마음의 상처로 이곳에 오게 됐는지 나오지만, 리사의 경우에는 결말에 다다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어릴 때 부모와 이뤄지지 못한 정서적 유대관계는 리사를 정신병원으로 계속 돌아오게 만들었다. 이곳에서만큼은 모든 이의 관심을 받고 있었으니까. 파괴적이고 파격적인 행동을 할수록 관심을 받기에 리사의 행동은 점점 더 사고뭉치가 돼버릴 수밖에 없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가엾기도 하다. 수잔나가 리사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쏟아부었을 때, 리사 역시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직시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은 이미 스스로 알고 있는데 필사적으로 회피하면서 정신적으로 질환을 앓게 되며, 질환에만 목매달아 더욱 그 현실을 회피하는 방법을 스스로 택한 게 아닐까.


누구든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다. 어릴 때 심리적으로 이뤄져야 할 발달 과정들이 충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해봄으로 인해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럼 그 트라우마는 꼭 지워내야 할 기억이 아니라 인생의 경험이 되어 현재와 미래를 발전시키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되는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 놓아주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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