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x년 5월 3일>
글을 쓰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든 노트에 적든 글을 써서 남긴다는 것,은 누군가 읽을 것을 전제하는 일이다.
그게 미래의 나일지라도.
그러므로 혼자 끄적인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글쓰기를 꽤 좋아했던 것같다.
머리 속에 온통 온갖 감정과 이야기와 단어들이 부유하고
그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던 그 시절,
어느날부터 하루에 한두시간씩 스트레스 해소처럼 일기를 쓰곤 했었다.
20-30년쯤 후, 미래의 내 아이를 키울 때 나의 글을 읽으면
아마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십대의 내 아이를 이해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일기장의 이름은, 아직 새벽이 채 열리지 못한 '未明'이었고
두툼한 스프링 노트를 거의 채울 무렵
독서실 책상 위에 있던 내 일기장을 도둑맞았다.
아마 누군가 호기심에 장난으로 가져갔다가 돌려놓지 못했을 수 있다.
장사가 되지 않던 동네 독서실,
두 셋 있던 열람실에서 내가 점심먹으러 간 사이
오롯이 혼자 앉아 있던 그 아이가 도둑임을 거의 확신했지만
'혹시 내 노트 못봤니, 누가 내자리에 오지는 않았었니,
야 이 도둑년아, 당장 노트를 내놓아라!'
속으로 온갖 시나리오를 짜보기만 하다
그런 말들을 차마 입으로 뱉어낼 깜냥도 안되던 나는
말끔하게 묶은 그 아이의 포니테일을 뒤에서 바라보며
진심으로 그 도둑을 저주하다, 혼자 울다,
다시는 무언가를 글로 남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십대동안
나는 다시 무언가를 웹상에 끄적이기 시작했고
마치 삶의 이력처럼 설익은 젊음이 글자로 변환되어 쌓여갔다.
그 시절 내 기록장의 제목은, 모든 경계를 허무는 '파벽'이었다.
다듬지 못한 돌덩이처럼 굴러가던 나의 20대는
스미듯 다가온 그 사람과 가정을 꾸리면서 마무리되고
작은 생명과 함께 30대가 열렸다.
내 피와 살을 나누어 나온 아이가
눈을 뜨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앉고, 서고, 기고, 아장아장 걷게 될 무렵
약에 취한 듯 아이에 취해 힘든 것도 모르고 육아에 전념하던 어느날
이미 몇 주 전에 온 메일을 확인하게 되었다.
글자로 변환된 나의 설익음 십 여 년이 모두 삭제되었노라고.
그 무렵이었던 것같다.
어른인줄 알았던 나의 20대가
얼마나 철딱서니 없고 풋내 나는 시절이었는지 깨달았던 것이.
모든 것은 무너진다,고
영원한 것은 없다,고
그러므로 없어진 것에 매달리면 안된다,고
이게 말이 쉽지 받아들이는 것이 쉽던가.
어리석게도
또다시 무너질 것이 분명한 글을
마흔을 한 해 앞 둔 지금
나는 또 쓰고 있다.
반복되는 어리석음이
그저 똑같은 어리석음이지 않기를
언젠가 그 반복이 멎게 되기를
부질없는 글쓰기가 부질없음을 보게 하는 창이 되기를.
나는 누구를 위해 쓰고 읽는가.
결국 글은,
읽는 자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쓰는 자를 위한 행위임을
이제야 알게 되고
나는 아직 이름도 정하지 못한 끄적임을 시작한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