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배운 감정 다루기의 기술

한국 엄마의 문화 충돌 일기

by Mrs Singer

나는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인지, 아이를 낳고 처음 알았다. 문학소녀였고, 감수성 예민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언제나 뭔가 ‘잔잔한 분위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그 분위기대로 살 줄 알았다. 그래서, "안돼!"를 그렇게 대차게 소리 지르게 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에너지가 상상을 초월했다.


"18개월짜리가 3km를 걸었다고?"

어느 일요일 아침, 남편이 첫째(당시 18개월)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왔다. 신이 나서 돌아와 하는 말이, “자기야! 얘가 3km를 걸었어!” 그 순간 내 눈은 뒤집혔고, 입에서는 “너는 제정신이야? 18개월짜리를 3키로를 걷게 했다고??”가 튀어나왔다. 근데 그게 시작이었다. 우리 아이한테 이 정도는 ‘혹사’가 아니었다는 걸, 그 해 여름 아주 뼈저리게 알게 됐다.


어디를 가든, 위험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안돼!”가 튀어나왔다. 내 목소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고, 심지어 내가 소리 지르면서도 나 스스로 놀랐다. 더 충격적인 건… 놀이터에서 나 혼자 소리 지르고 있더라.


조용한 유대인 엄마들, 그리고 미국 엄마들

우리가 사는 동네는 정통 유대교(Orthodox Jewish) 가정이 많은 곳이다. 금요일이 되면 ‘샤밧(Shabbat)’이라는 종교 의식을 지키러 가는데, 그때 보면 8명쯤 되는 아이들이 오리 새끼처럼 줄줄이 귀엽게 걸어간다. 3명은 기본이고, 8명이 있어야 ‘구색이 맞는’ 육아의 고수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정말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넘어져도, 울어도, 그 엄마들은 조용히 다가가서 눈을 맞추고 설명하고 안아준다. 심지어, 유대인 엄마들뿐 아니라, 일반 미국인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친구 장난감을 뺏어도, 모래를 던져도, 심지어는 자기 동생을 미끄럼틀에서 밀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는 엄마는 나뿐이었다.


그날 이후, 내 ‘안돼’는 달라졌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또 “안돼!!”라고 고함을 지르려다가… 끝에 힘이 빠졌다. “돼…”로 흐려지며 입을 다물었고, 문득 깨달았다. 나 혼자구나. 그 다급한 고함, 누가 들어도 ‘엄마가 힘들구나’ 싶은 그 외침. 그게 나만의 언어였나.


미국에서는 ‘화’를 어떻게 다룰까?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법적으로 아주 철저하게 보호받는다. 아이를 때리거나, 소리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은 ‘신고’ 대상이다. 처음엔 이게 너무 생경했다. 화가 치밀어 오르면, 뭐라도 집어 던지고, 소리부터 나오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한국식 감정 표현 방식이었으니까. 그런데 미국 엄마, 아빠들은 그런 감정이 복받쳐 올라와도 침착하다. 물건을 던지지 않고, 욕설도 하지 않고,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 이게 이 사람들의 ‘무른 문화’라고 생각했던 나. 하지만 알게 됐다.


이건 학습된 행동이고, 연습 가능한 기술이었다. 이건타고난 게 아니었다. 학습된 행동이었고, 연습하면 충분히 익힐 수 있는 기술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평생, 누군가 화가 났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폭력을 쓰는 걸 거의 보지 않고 자란다. 그래서 화가 날 때도 그냥, 그 대신 다른 선택을 하는 것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화 내리는 연습을 10년간 했고...몸에 사리가 생길 듯 했다. 처음엔 부끄러웠다.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방식이 사실은 학습되지 않은 방식이었단 사실. 그래서 시작했다. ‘화’ 내리는 연습을. 화가 날 때 뒤돌아서 나가기, 10초 세기, 목소리 낮추기, 아이 눈높이에 맞춰 앉기,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 매일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바뀌었다. 다행히 아이들도 말귀를 조금씩 알아듣게 자라줬고, 나는 그만큼 ‘폭발해야 하는 상황’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조금은 미국 엄마들처럼 나긋나긋해졌다. 나는 그렇게 바뀌었다.


이게 나쁘다? 아니다. 그냥 다를 뿐이다 처음엔 “이게 뭐야~ 나쁘다 문화인이다~”라고 장난처럼 넘겼지만,

지금은 안다. 그냥 한국과 미국은 ‘다르게’ 감정을 다루는 문화일 뿐이다. 한국은 감정을 다 표현하며, 그만큼 상대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문화고, 미국은 개인의 감정을 존중하되, 타인의 경계를 넘지 않는 문화다.


지금의 나는, 화가 나면 “와아!!” 하고 나왔다가, 바로 “미안해…” 하고 사과한다. 이게 내가 찾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 엄마의 균형이다. 조금은 타협했고, 조금은 진화했고, 무엇보다 아이 덕분에 바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혹시, 언젠가의 제 모습처럼 미국에서 처음 아이를 키우며 이 낯선 문화 속에서 당황하고, 나만 이상한가 싶어 외롭고, 내가 좋은 엄마가 맞나 싶은 마음이 드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은 힘드시겠지만, 조금은 달라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그렇게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스스로 그 감정을 가라앉히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면, 어쩌면 그 모습이, 꽤 자랑스러워질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