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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Jun 30. 2022

분노조절 일기의 시작

이게 다 콧물 덕분이다.

정말 키보드 앞에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기간이 있다. 이제 체력의 문제도 보태져서 아이들을 재우면 나 역시 잠에 빠지기 일쑤고 때론 거실에 어기적거리며 나와서도 그대로 소파에 다시 뻗곤 한다. 어제도 분명 10시 반에 방탈출을 한 것 같건만 소파에서 더 자고 나니 시계는 1시를 넘어간 지 오래였다. 애들 라이딩과 바깥 대기가 잦은 나의 전원생활은 낮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어버렸다. 결국 꼭 해야 하는 일들은 육퇴한 이후 밤으로 미뤄지곤 한다. 내 분노조절 일기는 이런 새벽에 시작된다.


어찌어찌 정신을 차린 새벽 2시에 손에 고무장갑을 껴고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콧물이 나면서 코가 못 견디게 간질간질하다. 설거지 중 콧물은 비염러인 내게 흔하디 흔한 일인데 이번엔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지금 새벽 2시에 설거지옥을 헤매는 내 코에서 감히 콧물 네 놈이 나온다 이거야? 정체 모를 화가 치밀어서 물을 신경질적으로 탁 끄고 고무장갑을 뒤집어 벗어버렸다. 이거 어차피 내가 다시 뒤집어서 껴야 하는데 이렇게 막 벗어버리는 짓은 평소라면 아무리 급해도 하지 않는 행동이다. 휴지를 신경질적으로 뽑아 콧물을 닦고 다시 장갑을 끼는데 이럴 일인가 싶어 멈췄다. 이마의 주름을 풀고 잠잠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이제  군데서 다 화가 올라오는구나. 하루 이틀 일은 아니고 엄마라는 역할을 받아 든 그때부터 그래 왔는데 새삼 이 치미는 화를 다스리고 싶어졌다. 내 이래 봬도 육아와 함께한 세월만 9년 차가 아니던가.


브런치는 잊을만하면 알람을 주었다. 60일이나 됐다, 지난 글 이후 구독자가 늘었다, 조회수가 몇을 돌파했다 등 내가 고요한 동안에도 아차 할 명분을 주곤 했다. 제발 좀 써라. 너무하지 않냐는 그런 잔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한 번씩 방문자가 급증하면 대체 어디에 떠서 그런지 찾아다니며 소소한 재미도 맛본다. 결국 나는 뭔가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브런치를 통해 찾고자 했던 모양이다. 오늘도 브런치의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다. 이번 역시 글 좀 쓰라는 말을 아주 부드럽게 돌려 말한다. 아, 친절한 이여. 나한테 이렇게 질척대는 웹사이트(?)는 네가 처음이야.


"밤 10시에 놀이터 간다고 떼쓰는 게 맞아?"

"(도리도리)"

"엄마 속상해."

"죄송합니닷."


아이들을 재우려고 누우면 어둠 가운데 내 입에 남은 남은 잔소리가 삐져나온다. 아침에 얼마나 힘들게 하고 다음 날 졸리다고 투정할 것이 보이는데 10시에 놀이터를 가겠다니. 난 몹시 화가 났다. 한편으로는 욱 하는 마음이 좀 슬퍼졌다. 아이의 혀 짧은 소리에 나도 좋게 마무리하고자 애써 조용히 대답한다.


"괜찮습니닷."


나름대로 대답은 장난을 섞어 던졌지만 내 마음은 미처 달래지지 않는다. 거실에 나오니 주방 근처에 수박향이 가득했다. 과일 껍질을 미처 치우지 못한 탓이다. 이번에는 듣도 보도 못한 외이도염이 생겨 에어팟을 금지당한 참이다. 대신 아주 작게 음악을 틀고 산처럼 쌓인 집안일을 시작한다. 휴대폰에서 멀어지면 음악 소리는 더 작아지고 가까워지면 소리가 다시 커진다. 귀에 딱 끼우고 듣던 소리보다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요즘 모닝 페이지를 다시 시작했는데 이건 뭐 나이트 페이지에 가깝다. 하루 중 아무 때나 쓰는 중이라 모닝에 상당히 가까운 밤중에 쓰기 일쑤다. 조금 기다렸다가 쓰면 모닝 페이지라고 우겨도 되겠는데 싶어서 날밤을 새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자고로 모닝 페이지는 자신이 잘 먹고 잘 자게 돌보며 쓰는 것이라 하였거늘! 아침에든 밤에든 역시 써서 털어내는 것은 내게 건강하고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마침 오늘 도서관을 가는 바람에 보고 싶은 책을 빌려온 참이지만, 먼저 이렇게 끄적임으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나의 시간은 마음이 고요해져야 비로소 시작한다.


다시 설거지를 하다가 콧물이 날 수도 있지만 저번만큼 짜증이 나진 않을 것 같다. 이 분노조절 일기를 떠올리며 이번엔 잠깐 장갑을 벗고 콧물을 닦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설거지를 해야겠다. 피식 웃음이 날 것도 같다. 이게 아마 내가 없는 시간을 쪼개서 끄적이는 이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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