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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어 가는 삶의 징후

차라리 살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by 미미

나는 볼이 동그란 아이였다. 친구들이 내 볼을 꼬집듯이 만져보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이 볼은 아마 눈에 띄게 동그랬던 모양이다. 가끔 말랐다는 소리를 듣던 시절에도 몸에 비해 크고 동그란 얼굴과 통통한 볼살은 때로 콤플렉스였다. 그런 불만을 품을 때면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동안이니까 좋은 거야. 볼살 없으면 나이 들어 보여."


정말 그렇다. 지금의 나는 나이에 어울리는 얼굴이 되어 내 나이를 얼추 맞추는 이들이 많아졌다. 게다가 볼살보다 군살을 빼는 게 시급한 입장이다. 거울을 보면 주름과 피부가 더 신경 쓰이고 가끔 손의 핏줄을 보며 나의 나이를 실감한다. 언젠가 엄마의 손을 보면 핏줄과 뼈마디가 튀어나온 것이 늘 이상했는데 내 손도 어느덧 나이 드는구나. 생각보다 너무 빨리 흘러가는 시간에 두려움이 찾아들기도 한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주말 아침, 아이들 양치를 시키며 하품을 해대던 나는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의 울먹임이 할머니의 부고를 전했다. 일찍 남편을 보내 혼자 아들 둘을 키우고 이제껏 60년이 훌쩍 넘는 긴 세월을 외롭게 살아낸 할머니는 고단한 세월을 마치셨고, 아빠는 이제 엄마마저 없는 고아가 되었다. 혹자는 호상이라 쉬이 말하는 95세 할머니의 장례는 내게 슬프고 쓸쓸하기만 했다. 수십만 페이지도 모자랄 할머니의 사연들이 뼛가루로 남아 그 작은 유골함에 담겼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죽음에 호상은 없다.


나는 할머니와 친하지 않다. 아들만 둘에 손자가 셋인 할머니는 유일한 여자아이인 나를 하나뿐인 손녀라고 칭하며 좋아하셨지만 할머니는 내게 늘 어려웠다. 부모님의 큰집 방문은 여러 가지로 편하지 않은 자리였기 때문이다. 사다 드리는 옷에 필요 없다 화내셨고 용돈을 드려도 쓰지 않으시는 데다 몇 가지 이단 종교를 믿기도 하셨다. 명절에나 한 번씩 할머니를 뵐 때면 더 말라가시는 게 보였다. 정정하신 것 같아도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나이 듦을 보며 나는 매번 시들어가는 삶에 묵상했다. 큰집을 나서는 나의 부모님을 자세히 보면 더 서글퍼졌다. 단단해 보이던 아빠의 몸집이 작아짐을 느낄 때, 나보다 가벼운 엄마가 뿌리 염색을 미루다 하얘진 머리카락을 잔뜩 내보일 때, 난 자꾸 으슬으슬한 추위를 느꼈다.


오랜만의 외식, 꽃은 피고 지고-


이제 주변에 결혼식은 좀처럼 없다. 되려 장례식에 슬슬 걸음 하게 된다. 작년에는 외삼촌이 돌아가셨고, 올해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가시고 며칠 뒤에는 교회 대학부 때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문자가 왔다. 그 오래전 좋았던 시절의 친구가 용기 내서 소식을 보낸 것이 고마웠다. 멀어서 갈 수는 없었지만 진심으로 위로가 되고 싶었다. 부고 소식은 늘 그렇다. 그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치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소식. 걷고 뛰며 내 삶을 살다가 발을 멈추게 되는 소식. 게다가 부친상이라니... 송금을 하고 고민 끝에 위로의 카톡을 보내다 보니 마음이 뒤숭숭했다.


앞머리가 자꾸 내려와 귀찮은 나머지 똑딱 핀을 하나 꽂았다. 이러면 동그란 얼굴이 한층 돋보이지만, 첫째는 날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예뻐요." 어쩌면 살이 붙은 얼굴은 나쁘지 않다. 언젠가 볼이 홀쭉하고 팔다리가 가늘어지며 늙어갈 훗날에도 어딘지 모르게 생기 있는 사람이고 싶다. 죽음만 묵상하기에는 현실에는 한창 키와 말발을 더해가는 아이들이 내 품에서 자라고 있다.


오랜만에 동네 마카롱 집에 들렀다. 안면이 있다 보니 마스크 속 나의 정체를 알아채신 모양이다.


"어? 살이 빠지셨어요."

"네, 요새 신경 쓸 일도 많고 해서 어쩌다 보니 빠졌어요."

"아.."

"다시 찌우려고요."


응? 왜 다시 찌우겠다는 소릴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나는 디저트를 무조건 살 것이고 살 빠졌다는 말을 들어도 요요가 올지언정 먹고 말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걸 수도 있겠다. 바스크 치즈 케이크와 당 떨어질 때를 대비한 비상용 마카롱을 사 가지고 나왔다. 손에 느껴지는 묵직함에 피식 웃음이 났다. 칼로리 높은 거 빤히 알고도 즐겁지 뭐야.


바스크 치즈케이크와 쿠키


나의 시들어감이 느껴질 때, 차라리 살집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일상적으로 겪는 육아 스트레스는 야식으로 풀다 살을 얻었다면, 더 극심한 스트레스는 되려 입맛을 앗아갔다. 처음 겪는 상황과 피할 수 없이 견뎌야 할 일들이 자꾸 늘어가는 삶에서 낯선 것들을 소화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삶을 살아낼수록 난이도는 올라갈 뿐이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친척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 엄마가 날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초딩 때 그랬다니까. 지금이 좋지, 어른 되기 싫다고."


그러니까요.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초딩 때부터 어른이 되기 싫더라니. 그래도 어쩌겠어. 세월을 잡을 초능력도 없는 걸. 살집인지 맷집인지 모를 살들을 적당히 찌워가며 시들지 않을 것처럼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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