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무 살

이렇게나 힘든데, 왜?

by Mimyo


나는 어릴 적부터 삶을 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내 주위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민 없이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것 일까 , 태어났으니 목숨 부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 그들이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말 많은 생각들로 인해 이러한 삶의 대한 고찰을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난 꼭 그 의미를 찾고 싶었다.

왜 , 나는 결국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철학적인 부분에 있어서 나는 억지 위로도, 또 방관도 하는 걸 싫어하는 입장이라서 요즘 많이 나오는 에세이 책들이 좀 별로다. 일단 제목들부터 읽고 싶은 것도 없는데 좀 괜찮아 보인다 싶어서 조금 열어서 읽어보면 똑같은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당신은 못난 사람이 아니다, 힘들 땐 힘내지 말아라 등... 물론 이 말들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에겐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역시 이렇게 적다 보니 나 역시 그런 글들을 쓰는 거 같아서 신경 쓰인다. 또 나를 아는 지인들은 내가 수없이 우울증에 대해 고백을 하는 나약한 아이라 지겨워서 내 글을 읽기 귀찮아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요즘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2020년부터 22살이 된 나는 조금은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스트레스에 예민한 성격 탓 인지, 우울했던 적이 많았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라던데 그만큼 마음으로 계속 기침과 재채기를 했다. 살아가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내일이 오는 것에 환멸이 나 자살을 계속 생각했지만 항상 자해에서만 그쳤던 가장 큰 이유는 가족들이 눈에 밟혀서였다. 내가 죽으면 당연하게도 무너지고 삭막해질 우리 가족들, 사후세계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 모습들을 지켜보아야 한다면 죽음보다 괴로울 것 같았다.

결국 , 죽음도 살아가는 것도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정말 속 빈 강정처럼 살았다. 대외적으로는 정말 정상적인 사람처럼 , 아니 보통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나는 계속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 거야?

타인과 비교하면서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대부분이었다. 뭘 해도 남보다 낫지가 않고 모든 결과물이 흡족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가치를 깎아내렸다. 처음엔 따뜻한 위로들로 치유가 되기도 했고 도움이 되었으나 , 그게 결국 내 고민과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점점 그냥 아무 의미 없이 힘내, 넌 좋은 사람이야 등의 이야기들이 가식적으로도 느껴지고 도리어 힘이 빠지는 말이 되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여리고 정신이 약하게 태어난 것인가, 왜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사회는 없을까, 하지만 이게 사회 탓을 할 문제는 아니란 걸 잘 알았기에 이런 말들을 밖으로 내뱉고 다니진 않았다. 아니, 어쩌면 너무 티 내고 다녔다.


어쨌든 우울감은 항상 달고 살아왔지만 , 그게 폭발해버린 건 19살부터 20살 때였다. 결정적인 원인은 한 꿈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 포기했다.

집안 사정으로 학원이나 대학을 갈 여력이 되지 못했고 뒷받침할 엄청난 실력도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암울한 환경을 이겨낼 내 '의지'가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이 너무 한심했고 , 바로 취업을 했지만 어린 나이였던 탓인지 모든 게 미숙하고 힘들었다. 매일 울며 잠이 들었다.

그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울며 잠을 원하고 있을 때 , 갑자기 정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졌다.

' 살기 시작한 것도 내 의지도 아니었고 죽음까지도 내 의지대로 못한다면 그냥 죽음만큼은 나를 위해 선택해버리자.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귓속에서 이상한 소리들이 멈추질 않았다. 너무 무서워서 손이 떨렸다. 그리고 드디어 멈춘 순간, 정신이 맑아졌다.

' 나 정말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구나. '


나중에 상담을 받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 이 증상이 정신분열증 초기 증상이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심해지기 전에 , 그때부터 정말 나를 위해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 ' 삶의 권태를 버려버리자, 미래를 돌아봤을 때 더 멋진 내가 되어있자 ' 하며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앞서 말한 뻔한 위로 형식 에세이부터 철학책들까지, 끌리는 책은 독후감도 적어놓으려고 노력했다. 많은 책들을 접하면서 좋았던 건 자아를 찾는 중인 나에게 어떤 것이 옳은 생각인지 선택하여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어서였다. 그 사상이 꼭 대중적이지 않아도 내가 옳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내 가치관 구축을 돕도록 했다. 그렇게 차츰 우울함의 근원인 희미한 상태의 자아의 조각이 채워져 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의 가치관에 있어서 큰 영향을 주었던 도서는 ' 니체의 인간학 '이었다. 니체는 약함을 무기로 내세우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것이 어렸던 나에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 얘기들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착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사회로부터 말살당하고 싶지 않아서,
즉 악행을 저지를 만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 저항하며 홀로 살아갈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약함을 내세워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동정을 받으며 무기로 휘둘렀는가 생각을 하자니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이 주위에 한 명도 없었는데 갑자기 나에게 우연으로 찾아온 인연이 위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에게 건넸을 때 정말 신선한 충격과 상처였다. 그리고 추후에 그 인연이 떠나고 나서도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이 처음이었어서 더욱 잊기 힘들었다.

그래서 , 그렇게 충격을 받고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냐고? 사실 겉으로 보는 '나'는 크게 달라진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점차 눈의 위치를 돌려 , 세상을 바라봄 뿐 만 아닌 '나' 도 함께 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내 안에 갇혀있던 감정과 이야기들을 적어 내려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