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 자리에 없었던 듯이
자해도 자살시도도 해보았지만 결국 나는 시체가 되어 죽는 걸 바라는 입장은 아니었다. 또 내가 죽고 나면 남게 될 나의 유품들이나, 사진, 데이터들도 남기고 싶지 않다. 우울증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부터 극복하고 싶어진 목적과 계기를 브런치를 통해 나열해 나가다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나는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그만큼 간절하게 살고 싶구나.
'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
옥상달빛 노래 제목이다. 저마다의 우울한 이유와 결론이 다 다르겠지만 나의 우울을 노래 한 곡으로 함축적으로 잘 표현해 준 완벽한 노래다. 가사 한 글자 한 글자 공감이 안되는 부분이 없다. 그리고 내가 이 노래가 너무 소름 돋았던 이유는 노래를 들으며 내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곱게 정리한 이불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아무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그런 생각을
내가 사라졌으면 내가 사라진다면
처음부터 이 자리에 없었던듯이
…
오늘도 어제처럼 열심히는 살고 있어
이렇게 살다 보면 내가 사라지면 안되는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겠지
언젠가 지금보다 행복한 일들도 생기겠지
이렇게 살다 보면
우울에 치달을 땐 새벽뿐만이 아니라 화창한 아침과 바쁜 낮에도 가리지 않고 눈에 생기가 없어진 채로 안에 깊숙이 들어있던 모든 환멸감을 끌고 와 내가 사라지고 싶단 생각에 휩싸인다. 앞서 말했듯 거창하고 요란하게 피를 흘리니 몸이 아작나니 그렇게 죽는 게 아니고, 처음부터 이 세상에 내가 없던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의 딸이 아니고 형제의 막냇동생이 아니고 친구들도 날 잊고 지인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고, 내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평온할까.
계속해서 나는 열심히 살거고 그럼 더더욱 사라지면 안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부담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만큼 더 행복한 순간들이 올거라는 것도 믿는다. 하지만 이렇게 희망도 보이고 지금 전혀 불행한 일이 없는데도 우울한 건 정말 병인 것 같다.
내가 바라는 건 온전한 인간관계다. 그게 우정이든 사랑이든 마찬가지인데 아직 둘 다 충족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내 주위 우정과 사랑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게 아니라 오롯이 내 욕심 때문이다. 관계에서 오는 갈증 하나만으로 이다지도 우울할 수가 있는지 의문이다. ' 숫타니파타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이 말을 결심한지 2년째인데 혼자서 행동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익숙해져 남이 보면 자존감 넘치는 사람이겠지만, 사실 나와 같은 뿔들이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혼자라는 건 너무 쉽고 좋지만 그만큼 외로움이 동반되는 것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나는 아직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그렇지만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은 먹었고, 세상이 그래서 어렵다.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내 글에서 거듭 마무리되던 멘트였듯이 나는 어떻게든 살아내 보기로 결정했다. 어찌 보면 반강제적인 결정이지만 위에 계속 언급했듯 나는 관계에 대해 갈증을 느껴 고통받고 이겨내려 발버둥 친다. 그래서 잊고 있던 내 꿈을 다시금 새겼다. 나처럼 많이 우울했던, 우울한 사람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굳은살을 배기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현실과 상황을 똑바로 보면 많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다시 딛고 일어나 '괜찮아질 수' 있도록. 어떻게든, 어떤 방법이나 형체로든 돕고 싶다. 그러려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체험으로 내 능력을 길러 와닿게 할 수 있게끔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하고 싶다.
나의 감정과 느낌을 적는 글들은 계속해서 적을 거지만, 내 우울증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고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고마운 '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를 마치며, 밝지 않아도 항상 밝고 소중한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무너지지 않기를 기원해본다.